멜리데의 환대와 마침내 이른 로마
난파에서 살아난 사람들은 이름도 모르던 섬에서 뜻밖의 환대를 받는다. 바울은 다시 위험을 겪지만 사람을 돌보며 겨울을 보내고, 긴 여정 끝에 로마의 형제들을 만난다.
난파에서 살아난 사람들은 이름도 모르던 섬에서 뜻밖의 환대를 받는다. 바울은 다시 위험을 겪지만 사람을 돌보며 겨울을 보내고, 긴 여정 끝에 로마의 형제들을 만난다.
낯선 사람들의 특별한 친절
육지에 오른 뒤에야 그곳이 멜리데, 곧 말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원주민들은 비와 추위 속에서 불을 피워 모두를 맞는다. 그들을 가리키는 고대의 말은 그리스어를 쓰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는 데 사용되었으므로, 오늘의 미개하거나 잔혹하다는 도덕적 평가를 그대로 담아 읽어서는 안 된다. 누가는 오히려 그들의 특별한 인간애를 강조한다.
복음을 가진 여행자들만 언제나 주고, 다른 사람들은 받기만 한다는 그림이 뒤집힌다. 바울과 일행은 먼저 자신들을 살리는 이웃의 손길을 받는다. 누가는 이 사람들이 모두 이미 신자였다고 설명하지 않지만 그 친절을 분명히 인정한다.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길에는 자신의 집단 밖에서 베풀어지는 선행도 포함될 수 있으며, 신자는 그것을 감사히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독사를 본 사람들의 두 번의 성급한 판단
바울이 나뭇가지를 모아 불에 넣을 때 독사가 손에 매달린다. 사람들은 그가 살인자이기에 바다에서는 살아나도 정의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해를 입지 않자 생각을 바꾸어 신이라고 말한다. 고난을 보아 죄인이라 단정하고 무사함을 보아 신으로 높이는 양쪽 모두 외적인 결과로 사람의 정체를 성급하게 판단하는 반응이다.
이 발언들을 누가의 확정적인 설명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바울은 살인자라고 판정받지도 신이라고 인정받지도 않는다. 독사의 종류와 독성, 당시 섬의 생태를 현대의 자료만으로 완전히 재구성할 필요도 없다. 본문은 우발적으로 당한 위험에서 보호받은 사건을 전한다. 위험한 뱀을 일부러 잡아 믿음을 증명하라는 지시와는 다르다.
기도하며 아픈 사람을 찾아가는 바울
섬의 유력자 보블리오는 일행을 사흘 동안 친절하게 맞아들인다. 그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로 누워 있자 바울은 들어가 기도하고 손을 얹어 낫게 한다. 먼저 환대를 받았던 사람이 이제 그 집의 고통을 돌본다. 기적은 외부 방문자의 우월함을 세우는 장면만이 아니라 서로의 실제 필요가 만나는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다른 병자들도 와서 회복되고 사람들은 떠날 때 필요한 물품을 마련해 준다. 이 대가를 정해 놓고 치유를 판매했다고 기록된 것은 아니다. 존중과 공급은 도움을 주고받은 관계의 응답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 단락에 설교의 전체 내용이나 세례 장면이 없다고 해서 아무 증언도 없었다거나, 반대로 섬 전체가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확정할 수도 없다. 기록된 돌봄과 모르는 후속 상황을 구분해야 한다.
겨울을 지난 뒤 다시 시작되는 항해
석 달 뒤 일행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난다. 그 배의 표지는 쌍둥이 신들이지만 바울이 승선했다는 사실이 그 신들을 예배했다는 뜻은 아니다. 고대 사회의 교통과 경제 안에서 이동하는 일과 우상에게 종교적으로 참여하는 일은 무조건 동일하지 않다. 모든 생활 접촉을 같은 의미로 해석하면 실제 삶의 문맥을 잃는다.
수라구사에 사흘 머물고 레기온을 지나 남풍을 타고 보디올에 이른다. 폭풍의 생존 이후에도 계절과 바람을 따라가는 현실은 계속된다. 한 번 구출되었다고 일상적인 시간과 조건을 뛰어넘는 존재가 된 것이 아니다. 주님의 약속은 사람을 인간의 삶 밖으로 끌어내기보다 그 안에서 다음 만남과 필요한 도움을 받으며 걷게 한다.
먼저 와 있던 형제들과 맞으러 나온 사람들
보디올에서는 형제들을 만나 이레 동안 머물라는 요청을 받는다. 바울이 도착하기 전에도 이 지역과 로마에 믿는 공동체가 있었다. 따라서 사도행전의 서술이 끝나는 곳마다 바울이 처음 기독교를 창시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누가는 복음이 어떻게 모든 지역에 처음 전해졌는지를 빠짐없이 기록하는 전기나 교회사 전체를 쓰고 있지 않다.
로마의 형제들은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세 여관까지 맞으러 온다. 바울은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용기를 얻는다. 다른 이들에게 늘 담대하라고 말하던 사도 자신도 형제들의 만남을 통해 힘을 얻는다. 위로가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이 사명의 권위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공동체는 지도자의 지시를 받는 집단만이 아니라 그 지도자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관계이다.
로마 도착은 자유로운 승리의 입성이 아니다
마침내 로마에 들어온 바울은 자신을 지키는 군인과 함께 따로 머무는 허락을 받는다. 일부 번역에는 죄수 인계에 관한 문장이 더 길게 나타나지만 주요 현대 본문은 더 짧다. 핵심은 감시 아래 있으면서도 사람을 만날 여지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바라던 도착과 여전한 결박이 같은 순간에 존재한다.
이 긴 항해는 바울의 결단만으로 이루어진 업적이 아니다. 동역자와 군인, 선원과 섬 주민들, 여러 도시의 형제들이 길을 받쳐 주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셨다는 고백은 그 사람들의 수고를 지우지 않고 감사하게 한다. 로마 도착의 기쁨도 모든 일이 해결되었다는 결말이 아니라, 구금된 자리에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할 새로운 시작이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말타 사람들의 친절은 증인이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는 존재임을 보여 준다.
- 바울은 우발적인 위험에서 보호받고 환대받은 집과 섬의 아픈 사람들을 돌본다.
- 로마 형제들의 만남은 바울에게 용기를 주지만 도착 뒤에도 감시는 계속된다.
섬 주민들의 살인자라는 판단과 신이라는 판단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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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인 고난이나 무사함을 근거로 한 사람의 정체를 성급히 확정한다. 본문은 그들의 추측을 기록하지만 그 판단을 승인하지 않는다.
바울이 형제들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사실은 지도자와 공동체를 어떻게 보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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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도 다른 이의 환대와 격려를 필요로 한다. 공동체는 일방적인 지시 체계가 아니라 서로를 붙들어 주는 관계이다.
함께 읽는 성경
- 로마서 1:8~15: 로마 성도들과 서로 격려받고자 했던 바울의 소망을 함께 읽을 수 있다.
- 누가복음 10:30~37: 집단의 경계를 넘어 실제 필요를 돌보는 이웃의 행동을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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