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8:1~28

함께 일하고 가르치는 동역의 길

아테네를 떠난 바울은 고린도에서 일하며 가르치고, 에베소와 안디옥을 거쳐 다시 제자들을 찾아간다. 길 위의 사역은 혼자 완성하는 성취가 아니라 생업과 환대, 배움을 나누는 동역의 관계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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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를 떠난 바울은 고린도에서 일하며 가르치고, 에베소와 안디옥을 거쳐 다시 제자들을 찾아간다. 길 위의 사역은 혼자 완성하는 성취가 아니라 생업과 환대, 배움을 나누는 동역의 관계로 나타난다.

이주한 부부와 함께 일하는 사도

고린도에서 바울은 본도 출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난다. 황제 글라우디오의 명령 때문에 이탈리아를 떠난 부부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바울이 함께 살며 일한다. 누가는 여기서 부부가 언제 처음 믿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바울이 도착하여 처음 회심시켰다고 단정하기보다 본문이 보여 주는 협력과 생업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천막을 만드는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과 무관한 지루한 배경이 아니다. 일하고 주거를 나누는 삶 안에서 가르침의 시간이 이어진다. 그렇다고 모든 사역자가 동일한 업종으로 자비량해야만 성경적이라는 명령도 아니다. 바울의 다른 서신은 교회의 지원도 인정한다. 이 단락은 생업 노동을 낮은 일로 여기거나 사도의 권위를 경제적 특권과 동일시하지 않게 한다.

반대의 옆집에서 계속되는 말씀

실라와 디모데가 오자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언하는 말씀 사역에 힘쓴다. 반대와 모독이 생기자 옷을 털며 책임을 밝히고 이방인에게 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옮겨 간 장소는 회당 바로 옆 유스도의 집이고 회당장 그리스보도 온 집과 함께 믿는다. 선교의 방향 전환을 모든 유대인과의 관계 단절로 읽을 수 없는 장면이다.

많은 고린도 사람이 듣고 믿어 세례를 받는 가운데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말하라고 격려하신다. 바울에게도 두려움과 위로가 필요하다. 이 도시에 많은 백성이 있다는 약속은 전도를 생략하게 하지 않고 일 년 육 개월 동안 가르칠 용기를 준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와 실제로 머물며 말하는 수고가 함께 간다.

갈리오의 기각과 보호의 한계

아가야 총독 갈리오 앞에 고발이 제기되지만 그는 유대인의 말과 명칭, 율법에 관한 문제라며 재판을 거절한다. 누가는 이 장면에서 바울이 국가에 해를 끼치는 범죄자로 판정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델포이에서 발견된 갈리오 관련 비문은 이 시기를 바울의 연대와 연결하는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지만, 모든 여행의 세부 날짜가 이 한 자료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어 회당장 소스데네가 재판석 앞에서 폭행당하는데 갈리오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로마 관리가 바울의 고발을 기각했다고 해서 그의 무관심까지 정의로운 행동으로 칭찬할 수는 없다. 누가의 서술 속에도 국가 권력의 보호와 방치가 함께 나타난다. 이 소스데네가 고린도전서 1:1의 동역자와 동일한지는 이름만으로 확정할 수 없다.

서원과 여행 계획을 함께 읽기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서원 때문에 머리를 깎고 부부와 함께 떠난다. 서원의 구체적인 시작 이유와 모든 절차는 기록되지 않는다. 나실인 서원과 연결하여 읽는 해석이 있으나 민수기 규정의 모든 세부가 이 장면에 설명된 것은 아니다. 바울의 자유를 성경의 관습을 무조건 거부하는 태도로 생각하면 이런 장면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에베소에서 더 머물러 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이면 돌아오겠다고 약속한다. 번역에 따라 21절에 예루살렘 절기를 지키려 한다는 문장이 더해져 있으나 주요 현대 그리스어 본문에는 없다. 이어 가이사랴에서 올라가 교회에 문안했다는 표현은 보통 예루살렘 방문으로 이해된다. 기록의 짧은 이동 정보를 완전한 여행 일지로 확대하지 않으면서, 그는 안디옥을 거쳐 다시 제자들을 굳게 하러 간다.

아볼로의 장점과 남아 있는 배움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는 성경에 능하고 열정적으로 예수에 관해 정확하게 가르치지만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다. 잘 아는 것과 더 배워야 할 것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존재한다. 누가는 그를 완전한 거짓 교사로 지우지도, 뛰어난 말솜씨 때문에 모든 이해가 완성된 사람으로 높이지도 않는다. 진실한 사역자도 내용의 보완을 필요로 할 수 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그의 말을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길을 더 정확하게 설명한다. 부부는 단순한 숙박 제공자를 넘어 성경을 가르치는 동역자로 나타나며, 여성의 참여도 분명히 기록된다. 이 장면 하나로 모든 교회의 직분 문제를 결론 내릴 수는 없지만, 여성에게는 어떤 신학적 설명의 역할도 없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설명은 그를 공개적으로 망신 주는 경쟁보다 더 정확한 배움을 돕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추천서를 들고 다른 공동체를 돕는 사람

아볼로가 아가야로 가려 하자 형제들은 격려하고 받아 주도록 편지를 보낸다. 개인적인 재능만으로 새로운 청중에게 스스로 권위를 선언하는 대신 공동체가 동역자를 연결한다. 그가 도착하여 은혜로 믿게 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성경을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설명한다. 배우는 태도는 사역의 권위를 파괴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잘 섬길 수 있게 한다.

고린도전서는 뒤에 바울과 아볼로의 이름을 경쟁 집단의 표지로 사용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사도행전의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은 같은 복음을 섬기는 다른 동역자들이다. 독자는 지도자의 이름을 소유하듯 자랑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일하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 환대하는 가정과 추천하는 교회를 통해 어떻게 한 공동체를 세우시는지 읽어야 한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고린도와 에베소의 사역은 생업과 주거, 환대와 가르침이 이어지는 동역 속에서 이루어진다.
  • 로마의 재판 기각이 국가 권력의 모든 행동을 정의롭다고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 아볼로는 더 정확한 가르침을 받아 다른 공동체를 돕는 동역자로 성장한다.
함께 생각해요

아볼로를 소개하는 장면은 사역자의 지식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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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아는 부분과 더 배워야 할 부분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재능과 열정은 배움의 필요를 없애지 않으며, 교정과 설명은 동역자를 세우는 일이 될 수 있다.

함께 생각해요

바울이 이방인에게 가겠다고 말한 뒤의 실제 장면을 함께 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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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회당 옆에서 전하고 유대인 회당장도 믿기 때문이다. 특정한 반대에 대한 선언을 모든 유대인과의 영구적인 관계 단절로 확대할 수 없다.

함께 읽는 성경

  • 고린도전서 3:4~9: 바울과 아볼로는 경쟁하는 구원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종들이다.
  • 로마서 16:3~5: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생명을 내놓는 동역과 집의 공동체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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