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에서 드러나는 말씀의 능력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돕는 동안 바울은 에베소에서 더 배워야 할 제자들을 만난다. 이후 지속적인 가르침과 특별한 표적이 이어지며, 예수의 이름을 마술처럼 사용하는 태도와 복음의 차이가 드러난다.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돕는 동안 바울은 에베소에서 더 배워야 할 제자들을 만난다. 이후 지속적인 가르침과 특별한 표적이 이어지며, 예수의 이름을 마술처럼 사용하는 태도와 복음의 차이가 드러난다.
누구의 제자인지 질문하며 드러나는 부족한 이해
바울은 어떤 제자들을 만나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는지 묻는다. 그들은 성령에 관하여 듣지 못했다고 답하며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설명한다. 누가는 이들을 제자라고 부르지만 처음부터 충분히 복음을 이해한 그리스도인이었다고 모든 상태를 확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알고 믿고 있던 내용은 뒤의 대화를 통해 더 분명해진다.
이 사건을 이미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면서도 하나님의 성령과 아무 관계가 없던 사람들의 표준 사례로 사용하면 대화의 전개를 지나치기 쉽다. 반대로 그들의 이전 신앙을 전혀 의미 없는 것으로 지워도 요한의 사역과 연결을 놓친다. 누가의 관심은 모호한 상태의 등급표를 만드는 데보다 예수께로 이르는 가르침이 사람의 이해를 어떻게 새롭게 하는지에 있다.
요한이 가리킨 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
바울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뒤에 오실 분, 곧 예수를 믿으라고 가르쳤다고 설명한다. 요한의 세례는 그 자체가 마지막 목적지가 아니라 예수를 향한 준비이다. 이들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같은 의식을 기계적으로 반복하여 능력을 높이는 일이 아니라 누구를 믿고 누구에게 속하는지 분명히 드러나는 전환이다.
바울이 안수하자 성령께서 임하시고 그들은 방언을 말하며 예언한다. 이 사건은 성령의 선물이 새로운 사람들에게 주어졌음을 확인하지만 모든 회심의 순서가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순절 전통은 능력의 부여를, 구속사적 읽기는 요한에게 연결되었던 집단의 그리스도 공동체 참여를 특히 주목한다. 두 읽기의 차이를 살피되 이 장면을 다른 신자를 열등한 등급으로 구분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회당에서 두란노의 강론 자리로
바울은 석 달 동안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를 논증하고 설득한다. 어떤 사람들이 완고하게 거절하며 그 길을 비방하자 제자들과 함께 자리를 옮겨 두란노의 강론 장소에서 날마다 대화한다. 말씀의 내용에 대한 신실함과 가르치는 공간의 유연함이 함께 나타난다. 익숙한 건물에 계속 머무는 것만이 충성의 기준은 아니다.
이 가르침은 두 해 동안 이어져 아시아의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주님의 말씀이 알려진다. 바울 한 사람이 지역의 모든 주민을 직접 만나 설교했다고 계산할 필요는 없다. 에베소에서의 지속적인 가르침이 넓은 지역으로 퍼지는 결과를 누가가 요약하는 것이다. 앞서 16장에서 아시아로 가는 길이 막혔던 일도 이 지역에 대한 영구적인 거절이 아니었음이 분명해진다.
특별한 능력을 재현 가능한 물건으로 바꾸지 않기
하나님은 바울의 손을 통해 특별한 능력을 행하시며, 그의 몸에서 가져간 손수건이나 앞치마가 병든 이들에게 닿아 회복이 일어난다. 서술은 먼저 행위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밝히고 이 일을 흔하지 않은 표적으로 묘사한다. 따라서 그 물건 자체가 언제나 능력을 지닌다거나 똑같은 물품을 판매하면 같은 결과를 얻는다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곧이어 떠돌며 귀신을 쫓는 이들이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이름을 빌려 쓰려 한다. 같은 이름을 발음한다고 같은 관계와 사명이 생기지는 않는다. 본문은 성경의 말을 소리와 절차의 힘으로 다루는 태도를 폭로한다. 기도와 예수의 이름은 초자연적 결과를 자동으로 조작하는 비밀번호가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께 의지하며 그 권세를 인정하는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스게와의 아들들이 드러내는 이름의 오용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은 악령에게 제압당해 상처 입고 도망친다. 스게와가 대제사장으로 불린다고 해서 그가 예루살렘의 공식 대제사장직을 실제로 맡았다는 이력이 여기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는 사건 속에서 불린 명칭을 전하지만, 독자는 이름과 칭호만으로 모든 역사적 지위를 추가해서는 안 된다. 이 이야기는 유대인 전체를 조롱하는 장면도 아니다.
사건이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알려지자 두려움이 임하고 주 예수의 이름이 높아진다. 높아져야 할 것은 바울의 개인적인 브랜드가 아니다. 복음의 권세는 사람을 속이고 통제하는 방식과 결별하도록 한다. 한 사람의 폭력적인 반응이 발생했다고 해서 현대의 정신 질환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모든 증상을 이 사건의 악령 활동과 동일하게 판정할 근거도 없다.
가치 있는 것을 버리며 드러나는 회개
믿는 사람들 가운데 이전의 행위를 고백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은 책들을 가져와 자발적으로 불태운다. 큰 금액의 가치가 기록된 것은 그들의 결별이 가벼운 말이 아니라 실제적인 손실을 감수한 행동이었음을 보여 준다. 이는 국가나 교회가 타인의 책을 강제로 빼앗아 태울 권한을 얻는 장면과 다르다.
주님의 말씀이 힘 있게 자란다는 요약은 성령의 표적과 지속적인 가르침, 잘못된 실천에서 떠나는 회개를 연결한다. 놀라운 현상이 많다는 이유로 사람의 생활이 바뀌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없다. 동시에 과거의 모든 문화적 산물을 일괄적으로 악마화하라는 지시도 아니다. 이들의 선택은 하나님을 조종하려던 수단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구체적인 방향 전환이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요한의 세례만 알던 이들은 예수에 관한 말씀을 듣고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 에베소의 지속적인 가르침은 아시아의 여러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는 길이 된다.
- 예수의 이름은 마술적 도구가 아니며 회개는 잘못된 실천과 실제로 결별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손수건과 앞치마 사건을 오늘의 효험 있는 물품 판매로 연결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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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의 주체는 하나님이며 본문도 특별한 표적이라고 설명한다. 곧이어 이름을 도구처럼 사용하는 태도가 폭로되므로, 물건이나 절차가 결과를 통제한다는 결론은 문맥과 어긋난다.
책을 불태운 사건에서 자발성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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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들이 자신의 실천과 수익을 내려놓고 회개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를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거나 강제로 검열할 권한으로 바꾸면 본문의 행위자와 목적이 달라진다.
함께 읽는 성경
- 누가복음 3:15~18: 요한의 세례와 뒤에 오실 분에 대한 가르침은 에베소의 대화를 이해하게 한다.
- 사도행전 8:18~24: 하나님의 선물을 소유하거나 거래하려는 시몬의 태도와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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