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24~48

경계를 넘어 임한 성령과 주님의 증언

서로 다른 두 준비는 가이사랴의 한 집에서 만난다.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과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임하는 성령은 이방인이 어떤 조건으로 하나님의 백성에 참여하는지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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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두 준비는 가이사랴의 한 집에서 만난다.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과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임하는 성령은 이방인이 어떤 조건으로 하나님의 백성에 참여하는지를 드러낸다.

엎드리는 사람을 일으키는 방문자

고넬료는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기다리다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린다. 베드로는 자신도 사람이라고 말하며 그를 일으킨다. 천사의 지시를 받아 온 사도라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복음의 전달자는 청중을 자기 앞에 낮추어 권위를 강화하는 대신 함께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한다.

들어가 보니 많은 사람이 모여 있고, 베드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교제가 당시 어떤 장벽을 지녔는지 말한다. 이 설명을 모든 시대 유대인의 마음을 판정하는 문장으로 확장하지 않아야 한다. 베드로가 강조하는 전환점은 하나님께서 어느 사람도 속되거나 부정하다고 부르지 말라고 자신에게 가르치셨다는 데 있다. 변화의 요구는 듣는 사람뿐 아니라 전하는 사람에게도 임한다.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새로 깨닫는 사도

고넬료는 기도하던 때의 만남과 사람을 보낸 경위를 설명하고, 이제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주님이 명하신 말씀을 듣고자 한다고 말한다. 기대의 대상은 베드로의 특별한 능력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식이다. 청중은 수동적인 군중으로 머무르지 않고 들을 준비를 하며, 사도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더 분명히 이해한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며 어느 민족에서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이를 받으신다고 깨닫는다. 출신 집단이 하나님께 접근하는 우월한 신분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음에 이어지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믿음으로 받는 용서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34~35절의 문을 열어 주는 선언은 43절의 구원의 증언과 함께 읽어야 한다.

이스라엘에게 보내신 평화의 소식, 모든 이의 주님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내신 평화의 말씀을 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의 주님이심을 밝힌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약속을 지워 새 종교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요한의 세례와 갈릴리, 유대 전역에서 일어난 일을 통해 청중에게 예수의 행적을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으신 예수는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고치셨다. 이 요약은 예수의 사역을 말의 가르침만으로 축소하지 않는다. 동시에 모든 질병의 원인을 동일한 방식의 악령 활동이라고 진단하지도 않는다. 본문의 중심은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하셨고, 예수의 권세가 사람을 억압에서 풀어 주는 방향으로 나타났다는 데 있다.

죽임당하신 분을 살리시고 증인을 세우신 하나님

사람들은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은 사흘째 되는 날 살리셨다. 베드로는 부활을 모든 청중이 직접 목격한 일처럼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미리 택하신 증인들에게 나타나신 일로 설명한다. 증인들이 부활하신 예수와 먹고 마셨다는 언급은 그 만남의 실제성과 지속성을 강조한다.

예수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이며, 예언자들이 증언한 대로 그를 믿는 사람은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 심판과 용서는 함께 선포된다. 예수의 주권은 불의를 그대로 승인하는 무조건적 관용이 아니며, 용서는 특정 민족의 자격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열리지 않는다. 청중은 자기 배경보다 이 주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

말씀을 듣는 동안 임하신 성령

베드로가 아직 말할 때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임한다.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은 이방인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부어진 것을 놀라워한다. 그들이 여러 언어로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누가는 이 사건에서 분명히 말의 표지를 기록하지만, 앞선 사마리아 사건에는 같은 현상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차이도 기억해야 한다.

베드로는 이들이 자신들처럼 성령을 받았으므로 누가 물세례를 막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여기서는 성령의 선물이 물세례보다 먼저 주어진다. 이 순서는 8장의 순서와 같지 않으며, 하나님을 사람이 정한 단 하나의 절차에 가두지 못하게 한다. 동시에 베드로는 세례를 생략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도록 명한다. 성령의 자유와 공동체의 순종이 함께 나타난다.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다는 말의 초점은 살아 계신 주님께 속하는 소속이다. 세례 때 발음할 문장만으로 다른 성경의 가르침을 배제하는 논증으로 좁혀서는 안 된다.

허락을 기다리는 손님에서 함께 머무는 형제로

고넬료의 집 사람들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러 달라고 요청한다. 단락은 놀라운 현상만으로 끝나지 않고 식사와 체류, 배움이 계속될 시간을 남긴다. 복음이 경계를 넘는다는 말은 멀리서 이방인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인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실제 사람의 집에 함께 머무는 관계가 시작된다.

이 사건에 가족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에 영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확정할 수는 없다. 본문이 명시하는 것은 모인 이들이 말씀을 듣고 성령의 선물을 받으며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교단별 세례 논의를 위해 필요한 다른 본문과 논증을 인정하되, 이 장면의 중심인 하나님의 동일한 선물과 서로를 받아들이는 책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베드로는 이스라엘에게 보내신 예수의 복음이 모든 민족을 향한 소식임을 선포한다.
  •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듣는 이방인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들의 참여를 확인하신다.
  • 베드로와 동행자들은 하나님의 선물을 인정하고 세례와 함께 머무는 관계로 응답한다.
함께 생각해요

베드로의 설교에서 예수의 심판과 용서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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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주님이시며, 누구든 그를 믿는 사람에게 용서를 주시는 분이다. 민족의 특권도 불의의 면책도 없고, 믿는 이에게는 출신을 넘는 은혜가 열린다.

함께 생각해요

성령이 세례보다 먼저 임한 사건은 무엇을 가르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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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물은 인간이 통제하는 하나의 시간표에 갇히지 않는다. 그러나 베드로는 세례를 명하므로 이 사건을 세례나 공동체 참여가 무의미하다는 근거로 삼을 수 없다.

함께 읽는 성경

  • 사도행전 2:1~41: 처음 제자들에게 임했던 성령의 선물이 이방인에게도 주어졌다는 연결이 강조된다.
  • 에베소서 2:11~22: 그리스도 안에서 멀리 있던 이들이 가까워지고 한 가족이 된다는 의미를 더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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