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27~40

오해와 폭력 사이에서 발언의 자리를 얻다

오해를 풀기 위한 정결 예식 중에 또 다른 오해가 폭력으로 번진다. 누가는 군중의 주장과 그 주장이 생긴 실제 근거를 구별하여 독자가 고발의 소리를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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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풀기 위한 정결 예식 중에 또 다른 오해가 폭력으로 번진다. 누가는 군중의 주장과 그 주장이 생긴 실제 근거를 구별하여 독자가 고발의 소리를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한다.

본 것을 넘어 사실이라고 단정한 사람들

일곱 날이 거의 끝날 때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무리를 선동하여 붙잡는다. 그들은 바울이 어디서나 백성과 율법과 이 장소를 거슬러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누가는 앞 장면에서 그가 성전에 들어가 예식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고발자의 말과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상황 사이에 간격이 생긴다.

특히 헬라인을 성전의 금지된 구역에 데리고 들어가 더럽혔다고 외친다. 그러나 29절은 그들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바울과 함께 성 안에서 본 뒤 성전에도 데려갔다고 추정했음을 설명한다. 본 것은 도시에서 동행한 사실이고, 주장한 것은 성전 안의 위반이다. 그 사이의 확인되지 않은 도약이 폭력의 근거로 사용된다.

거룩함을 지킨다는 말과 살리려는 책임

무리는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어내고 문들은 닫힌다. 누가는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했다고 말한다. 거룩한 공간을 지킨다는 언어가 실제 확인과 정당한 심리를 생략한 살의로 바뀐 것이다. 신앙적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는 확신은 그 가치를 내세우는 모든 행동을 자동으로 선하게 만들지 않는다. 문이 닫힌 사실을 성전이나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영원히 버리셨다는 상징으로 확정할 근거는 없다. 이야기에서 일어난 물리적 행동과 독자가 붙이는 신학적 의미를 구별해야 한다.

이 장면을 유대 민족의 본성에 대한 설명으로 사용하면, 바울과 예루살렘의 믿는 이들 및 그의 동행자들도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문제는 특정한 사람들이 확인하지 않은 고발을 확대하고 폭력을 행사한 일이다. 성경의 비판을 자기 공동체 밖으로만 돌리지 말고, 오늘 우리도 거룩함과 정체성을 내세워 소문을 사실로 바꾸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야 한다.

구하러 온 군대도 아직 진실을 알지 못한다

천부장은 예루살렘이 소요한다는 보고를 듣고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데리고 내려온다. 무리는 군대를 보자 때리던 일을 멈춘다. 로마의 무력이 이 순간 바울의 생명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군대가 곧 그의 무죄를 알고 구출한 것은 아니다. 천부장은 그를 체포하여 두 쇠사슬로 묶고 누구이며 무슨 일을 했는지 묻는다.

군중은 서로 다른 말을 외쳐 소리 속에서 진실을 알아낼 수 없고 천부장은 그를 영내로 데려가도록 명한다. 많은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분노한다고 같은 사실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는 혼란의 목소리와 서술자가 제공하는 정보를 나누어 들려준다. 독자도 발언의 확신이나 숫자보다 실제 근거를 구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사람에게 들려 계단을 올라가는 증인

폭력 때문에 군인들이 바울을 들어 옮길 만큼 무리의 압박은 심하다. 뒤따르는 사람들은 그를 없애라고 외친다. 이 소리는 누가복음의 예수에 대한 배척을 떠올리게 하지만, 바울의 모든 행동과 고난을 예수의 구속 사역과 동일한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증인은 주님의 길을 따르되 구원의 주인이 되지 않는다.

바울은 겨우 보호받는 순간에도 말할 허락을 구한다. 자기 억울함만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장에서 드러나듯 자기 민족에게 예수와 부르심을 설명하려는 기회를 찾는다. 그렇다고 피해자가 언제나 가해 무리 앞에 남아 설득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할 수는 없다. 여기서는 바울이 자신의 사명에 따라 선택한 구체적인 행동을 읽어야 한다.

이집트인이라는 또 다른 오해를 풀다

바울이 그리스어로 말하자 천부장은 그가 전에 반란을 일으킨 이집트인인 줄 알았다고 묻는다. 군중은 성전을 더럽히는 자라고 단정했고 관리도 다른 사건의 인물과 혼동하고 있었다. 양쪽이 서로 다른 이유로 그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신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공적 권한이 있다고 해서 첫 판단이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바울은 자신이 길리기아 다소의 유대인이며 그 도시의 시민임을 설명한다. 여기서 도시 시민이라는 소개와 뒤의 로마 시민권을 밝히는 장면은 구별된다. 누가는 한 사람에게 유대인의 정체성과 그리스어 사용, 도시적 소속이 함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를 한 가지 표지로만 분류하려던 시선이 수정되고, 천부장은 발언을 허락한다.

침묵이 생긴 자리에서 다시 시작되는 설명

계단에 선 바울은 손짓하고 큰 침묵이 생긴 뒤 히브리 말로 청중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는 당시의 셈어 사용을 어떻게 이해할지 논의되지만, 본문이 강조하는 기능은 청중에게 익숙한 말로 접근하여 더 주의 깊게 듣게 하는 데 있다. 그리스어로 관리와 말한 사람은 이제 같은 민족에게 그들의 말로 호소한다.

이 짧은 단락은 소문을 확인하는 절차가 무너질 때 얼마나 빨리 폭력이 커지는지 보여 준다. 동시에 기적적인 탈출만이 증언의 방식이 아님도 드러난다. 군대의 보호와 구금이라는 복합적인 조건 속에서 바울은 설명할 자리를 얻는다. 하나님께서 길을 여신다는 고백은 모든 제도가 선하다는 선언이 아니라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도 주님의 증언이 이어짐을 신뢰하는 말이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바울에 대한 성전 모독 고발은 도시에서 드로비모와 동행한 사실을 확대해 추정한 데서 시작된다.
  • 군중과 천부장은 서로 다른 오해를 가진 채 바울을 판단한다.
  • 바울은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 청중의 언어로 말할 기회를 얻는다.
함께 생각해요

29절이 고발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설명 보기

목격한 사실과 추정한 내용을 구별해 주기 때문이다. 드로비모와 도시에서 동행한 것은 성전의 금지된 구역에 함께 들어갔다는 증거가 아니다.

함께 생각해요

로마 군대의 개입은 어떻게 복합적으로 나타나는가?

설명 보기

군대는 군중의 폭력을 멈추고 생명을 보호하지만, 천부장은 아직 바울을 오해하며 구금한다. 보호의 기능과 제도의 불완전함을 함께 읽어야 한다.

함께 읽는 성경

  • 잠언 18:13, 17: 듣기 전에 판단하는 위험과 서로 다른 진술을 살펴야 하는 지혜를 연결한다.
  • 누가복음 23:18~25: 없애라고 외치는 군중과 공적 권력의 판단이라는 장면을 비교하되 각 사건의 고유성을 지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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