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에게 전하는 부르심과 시민의 권리
계단에서 얻은 발언의 기회에 바울은 자기 민족에게 낯선 외부인이 아니라 같은 신앙의 열심을 지녔던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의 변론은 과거를 미화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열심을 바꾸신 예수의 부르심에 대한 증언이다.
계단에서 얻은 발언의 기회에 바울은 자기 민족에게 낯선 외부인이 아니라 같은 신앙의 열심을 지녔던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의 변론은 과거를 미화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열심을 바꾸신 예수의 부르심에 대한 증언이다.
형제와 아버지들에게 전하는 자기소개
바울은 청중을 형제와 아버지라고 부르며 변론을 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그들이 익숙한 언어를 듣고 더 조용해지자 다소 출생과 예루살렘에서 자란 배경, 가말리엘에게 받은 교육을 설명한다. 자기 민족과 율법의 전통을 부끄러운 과거로만 지우지 않는다. 문제는 유대인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열심이 예수를 따르는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데 있다.
그는 청중의 현재 열심과 자신의 과거를 연결한다. 상대를 본성적으로 악한 집단으로 분류하는 대신 자신도 같은 확신 속에서 박해했다고 인정한다. 남녀를 가두고 다른 도시까지 체포하러 간 책임을 숨기지 않는다. 회심의 증언이 하나님을 높이는 말이 되려면 과거의 폭력을 위대한 사역자의 흥미로운 준비 과정으로만 꾸미지 않아야 한다.
박해하던 나사렛 예수를 만난 길
정오 무렵 하늘의 큰 빛과 자신을 부르는 음성 앞에서 바울은 누구인지 묻고 나사렛 예수라는 응답을 듣는다. 청중이 알고 있는 예수의 구체적인 이름이 그의 삶을 바꾼 주님과 연결된다. 바울의 새로운 길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버리고 낯선 신을 택했다는 주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가 반대하던 예수의 정체를 새로 알게 된 사건이다.
9장의 서술과 비교하면 빛을 본 동행자와 음성을 들은 방식 등에 표현의 차이가 있다. 소리의 청각적 지각과 말씀의 이해를 구별하여 읽을 수 있지만, 모든 차이를 하나의 문법 규칙만으로 해결했다고 과장해서는 안 된다. 세 차례의 회고는 동일한 만남을 각 청중과 논증의 목적에 따라 전한다. 독자는 공통된 중심과 달리 강조된 요소를 함께 살펴야 한다.
아나니아의 경건과 조상들의 하나님
이번 회고는 아나니아가 율법을 따라 경건하게 살고 다메섹의 유대인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청중이 의심할 만한 무법한 인물이 바울을 꾀어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앙 안에서 존중받는 제자가 그를 도운 것이다. 바울을 형제라고 부르는 인사는 적대자의 새 출발을 받아들이는 관계를 드러낸다.
아나니아는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바울을 택하여 뜻을 알고 의로우신 분을 보며 그 음성을 듣게 하셨다고 설명한다. 개인적인 특권을 누리도록 택한 것이 아니라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언할 사명이다. 부르심과 책임이 연결된다. 한때 자신의 확신을 다른 사람에게 폭력으로 강요했던 그는 이제 자신이 받은 말씀을 증언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세례와 이름을 부르는 믿음의 응답
16절은 일어나 세례를 받고 죄를 씻으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라고 권한다. 세례와 죄 사함을 가볍게 분리해 아무 관계 없는 외적 기호로만 만들면 이 문장의 긴밀함을 놓친다. 반대로 물의 행위 자체가 주님을 부르는 믿음과 무관하게 자동으로 죄를 제거하는 기술이라고 말해도 표현의 전체를 읽지 못한다. 본문은 예수께 향하는 응답과 세례를 함께 제시한다.
교단들은 세례가 은혜를 전달하는 방식과 믿음과의 관계를 다르게 설명한다. 그러나 여기서 공통으로 보아야 할 것은 바울이 자신의 지난 폭력을 덮을 새 공로를 쌓아 구원받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새로운 소속을 드러낸다. 세례를 누가 더 우월한 신자인지 과시하는 신분증으로 만들면 이 회개의 방향을 거스른다.
성전에서 주어진 이방인을 향한 부르심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환상 가운데 빨리 떠나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말한다. 성전을 더럽힌 사람이라는 앞선 고발에 맞서, 그는 그곳이 기도와 부르심의 자리였음을 증언한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사람들이 잘 알기 때문에 달라진 자신을 알아볼 것처럼 말하지만, 주님은 멀리 이방인에게 보내겠다고 하신다.
그가 스데반의 죽음에 찬성하고 옷을 지켰다는 고백도 이때 반복된다. 실제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 잘못이 미래의 사명을 영구히 막는 마지막 권세는 아니라고 증언한다. 청중은 이방인에게 보냄받았다는 말까지 듣다가 격렬하게 반응한다. 이 응답을 모든 유대인이 모든 이방인의 존재를 싫어했다는 심리 설명으로 단순화하지 말고, 바울의 정당성과 민족의 경계가 맞물린 현재의 갈등으로 읽어야 한다.
고문의 위협 앞에서 묻는 시민의 권리
천부장은 왜 소리치는지 알아내려고 채찍질하여 심문하려 한다. 소동의 원인을 모른다고 해서 고문이 진실을 얻는 정당한 방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이며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은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 합법인지 묻는다. 백부장은 이를 천부장에게 알리고 심문 준비자들은 물러난다. 정당한 권리를 사용하는 행동이 증언의 사명을 취소하지 않는다.
천부장은 큰돈으로 시민권을 얻었지만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시민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사실은 다소의 시민이라는 앞선 소개와 구별해야 하며, 그의 가문이 어떻게 시민권을 얻었는지는 기록되지 않는다. 다음 날 천부장은 사실을 알고자 공회를 소집한다. 한 연설로 모든 문제가 풀리지는 않지만, 바울은 낯선 혐의와 폭력의 절차 속에서도 자신의 말로 설명하고 보호를 요청할 기회를 사용한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바울은 같은 민족의 열심을 지녔던 박해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며 예수의 부르심을 증언한다.
- 아나니아와 성전의 장면은 그 부르심이 조상들의 하나님과 단절된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 준다.
-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보냄받았음을 밝히고 고문의 위협 앞에서는 시민의 정당한 보호를 요청한다.
바울이 자신의 박해를 반복해서 말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설명 보기
과거의 열심을 미화하기보다 잘못의 책임을 인정하고 그 방향을 바꾸신 예수를 증언하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변화는 스스로의 우월성보다 은혜와 새로운 사명을 드러낸다.
세례와 죄 씻음의 문장을 읽을 때 어떤 요소를 함께 보아야 하는가?
설명 보기
세례와 함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믿음의 응답이 제시된다. 물의 행위를 자동적인 기술로 만들거나 세례를 구원의 응답과 무관하게 지우는 양쪽의 축소를 피해야 한다.
함께 읽는 성경
- 디모데전서 1:12~17: 바울의 박해와 긍휼에 관한 고백은 회심의 증언을 은혜의 관점에서 읽게 한다.
- 사도행전 9:1~31; 26:1~23: 같은 부르심을 서로 다른 청중 앞에서 어떻게 설명하는지 비교할 수 있다.
읽는 곳은 이 기기와 브라우저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