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에게 상소한 죄수와 설명할 죄목
총독이 바뀌어도 바울의 사건은 곧바로 해결되지 않는다. 베스도의 정치적인 계산과 바울의 상소, 왕의 방문이 이어지면서 확실한 죄목 없이 갇힌 증인의 상황이 더 선명해진다.
총독이 바뀌어도 바울의 사건은 곧바로 해결되지 않는다. 베스도의 정치적인 계산과 바울의 상소, 왕의 방문이 이어지면서 확실한 죄목 없이 갇힌 증인의 상황이 더 선명해진다.
새 관리에게 다시 제기되는 옛 고발
베스도는 부임한 지 사흘 뒤 예루살렘에 올라간다. 대제사장들과 유력자들은 바울을 그곳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하지만 길에서 죽일 계획을 숨기고 있다. 두 해의 지연이 적대의 계획을 자동으로 없애지 못했다. 공적 편의를 부탁하는 말과 실제 의도 사이의 차이는 독자에게 알려지지만 총독이 그 모든 속내를 알고 있었는지는 본문이 말하지 않는다.
베스도는 바울이 가이사랴에 있고 자신도 곧 돌아가므로 책임 있는 사람들이 내려와 잘못이 있으면 고발하라고 한다. 이 시점에서는 절차적인 보호가 이루어진다. 이후 같은 관리가 정치적 호의를 얻기 위해 다른 제안을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한 번 적절한 판단을 했다는 사실이 그 인물의 다음 선택까지 자동으로 보증하지 않는다.
입증되지 않은 혐의와 장소 변경의 요청
가이사랴의 재판석에서 예루살렘의 고발자들은 무거운 혐의를 제기하지만 입증하지 못한다. 바울은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 가이사에게 죄를 짓지 않았다고 답한다. 종교적인 정체성과 제국에 대한 범죄 여부가 다시 구별된다. 사도행전은 같은 무죄의 방향을 반복하며, 구금 기간이 길다는 사실을 유죄의 증거로 삼지 않게 한다.
그런데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호의를 얻으려 예루살렘으로 가서 자기 앞에서 재판받겠느냐고 묻는다. 법정은 중립적인 공간처럼 보이지만 장소를 바꾸는 제안에도 권력의 계산과 피고의 안전이 걸린다. 바울은 총독이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고 말하며 부당하게 넘겨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신자는 거절할 수 있는 위험한 요구까지 언제나 순종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상소는 고난을 거부하는 불신앙인가
바울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다면 죽음을 거절하지 않겠지만, 혐의가 사실이 아니라면 누구도 자신을 넘겨줄 수 없다고 한다. 이어 가이사에게 상소한다. 그는 법의 책임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정당한 재판과 보호를 요청한다. 결박과 죽음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다는 앞선 고백은 부당한 처분에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베스도는 자문한 뒤 상소를 받아들인다. 이 결정으로 로마를 향한 길은 죄수의 이송이라는 형태를 띤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길과 사람의 정당한 제도적 선택이 함께 나타난다. 그러나 모든 신자가 어떤 상황에서도 같은 상소를 해야 한다는 법률 규칙을 이 장면에서 만들 수는 없다. 본문은 특정한 위험과 시민권, 재판의 상황 속에 있는 바울의 판단을 기록한다.
아그립바 왕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신임 총독을 방문하자 베스도는 사건을 설명한다. 이 왕은 12장의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아니라 그의 아들 아그립바 2세이며, 버니게는 그의 누이이다. 같은 왕조의 이름을 모두 하나의 인물로 합치지 않아야 후반부의 시간과 역할을 이해할 수 있다. 누가는 방문의 자리에서 죄수의 이야기가 다시 논의되도록 한다.
베스도는 고발자와 대면하여 변론할 기회 없이 피고를 넘겨주는 것이 로마의 관습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독자는 그가 앞서 호의를 얻으려 장소 변경을 제안한 사실도 안다. 관리가 말하는 절차의 원칙과 그가 실제로 감수하는 정치적인 계산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공식적인 원칙을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원칙을 언제나 충실히 지킨다는 뜻은 아니다.
죽은 예수가 살아 있다는 말의 중심성
베스도는 예상했던 범죄보다 그들의 종교에 관한 질문과 죽은 예수를 바울이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요약한다. 외부 관리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분쟁이지만 독자는 바로 그 부활이 바울의 증언의 중심임을 안다. 예수의 부활은 신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상징에만 머물지 않고 예수가 누구이며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에 관한 주장이다.
베스도는 조사 방법을 몰라 예루살렘행을 물었다고 설명한다. 이 말에는 앞서 서술자가 밝힌 호의를 얻으려는 동기가 빠져 있다. 누가는 같은 사건을 등장인물이 다시 말할 때 생기는 강조와 생략을 독자가 살피게 한다. 성경 안의 보고를 읽을 때도 모든 발언을 서술자의 전지적인 설명과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말하는 사람의 정보와 목적을 구별해야 한다.
화려한 청문회와 빈약한 죄목
아그립바는 직접 듣고 싶어 하고 다음 날 왕과 버니게, 천부장들과 도시의 유력자들이 위세를 갖추어 모인다. 그 가운데 바울은 갇힌 사람으로 끌려온다. 겉으로 보이는 힘과 발언의 자리는 크게 다르지만, 곧 왕과 총독이 증언을 듣는 청중이 된다. 이방인과 왕들 앞에서 이름을 전하리라는 부르심이 예상 밖의 자리에서 이어진다.
베스도는 사형에 해당하는 일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황제에게 보낼 확실한 죄목을 쓰지 못한다고 인정한다. 재판과 이송의 규모에 비해 혐의의 근거는 여전히 빈약하다. 다음 장의 연설은 새 유죄 판결을 위한 단순한 심문이라기보다 왕 앞에서 사건을 이해하려는 청문의 자리이다. 바울은 그 틈에서 자신을 변호하면서 동시에 청중에게 복음을 듣고 응답할 기회를 전한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베스도는 절차를 말하면서도 정치적인 호의를 고려하여 바울에게 예루살렘행을 제안한다.
- 바울의 상소는 정당한 보호를 요청하는 선택이며 로마를 향한 길을 연다.
- 화려한 청문회가 열려도 확실한 죄목은 없고 예수의 부활이 사건의 중심으로 남는다.
바울이 죽음을 거절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상소한 이유는 무엇인가?
설명 보기
정당한 책임을 부정하는 것과 입증되지 않은 혐의로 위험에 넘겨지는 것을 거절하는 일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불의한 처분 앞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보호를 요청한다.
베스도의 회고와 서술자의 설명을 함께 읽으면 어떤 차이가 보이는가?
설명 보기
베스도는 조사 방법을 몰랐다고 설명하지만 서술자는 정치적인 호의를 얻으려 했다고도 밝힌다. 공식적인 자기 설명의 생략을 본문 전체의 정보와 비교할 수 있다.
함께 읽는 성경
- 사도행전 9:15~16: 왕들 앞에서 예수의 이름을 전하리라는 사울의 부르심이 청문회와 연결된다.
- 빌립보서 1:12~14: 매임 속에서도 복음의 진전이 이루어졌다는 고백을 함께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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