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세례와 충만, 은사의 의미
사도행전의 성령은 사역자를 보내시고 길을 막으시며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증언하게 하신다. 거짓말로 시험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5장에서 강조되고, 돈으로 권한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이 8장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성령을 사람의 의지대로 축적하고 판매하는 에너지로 이해하면 책의…
성령은 사람이 소유하는 힘이 아니다
사도행전의 성령은 사역자를 보내시고 길을 막으시며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증언하게 하신다. 거짓말로 시험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5장에서 강조되고, 돈으로 권한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이 8장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성령을 사람의 의지대로 축적하고 판매하는 에너지로 이해하면 책의 장면들과 충돌한다. 은사를 받은 사람도 공동체와 주님 앞의 책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성령의 주된 목적은 사도를 신적인 존재로 높이는 데 있지 않다. 베드로와 바울은 기적 뒤에도 자신의 권세와 경배를 거절하며 예수께 사람들을 향하게 한다. 성령의 능력을 말하는 사역이 사람의 두려움이나 헌금을 이용해 지도자에게 종속시킨다면, 현상의 크기보다 그 관계와 열매를 살펴야 한다. 이름을 높여야 할 분은 주 예수이시다.
같은 선물과 서로 다른 순서
2장에서는 성령이 먼저 임하고 회개와 세례가 뒤에 선포된다. 8장에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믿고 세례받은 뒤 사도들의 방문 때 성령의 선물이 주어진다. 10장에서는 말씀을 듣는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한 뒤 물세례가 명해진다. 19장에서는 요한의 세례만 알던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받고 안수 후 성령을 받는다. 차이를 지운 한 가지 시간표보다 각 사건이 누구의 참여를 확인하는지 보아야 한다.
처음 성령으로 충만했던 이들이 4:31에서 다시 충만하여 담대히 말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충만은 한 번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경력만을 뜻하지 않는다. 6장의 돌봄 책임자를 세울 때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삶이 요구된다. 선교 현장의 능력과 일상의 성품, 말의 담대함과 필요한 사람을 섬기는 책임을 서로 경쟁시키지 않아야 한다.
주요 전통의 강조를 공정하게 비교한다
오순절 전통은 성령께서 거듭남 때 신자 안에 일하심을 인정하면서, 성령 세례를 봉사와 증언의 능력 부여로 구별하여 강조한다. 개혁 전통의 구속사적 읽기는 여러 집단의 참여가 확인되는 초기 사건의 특수성과, 신자가 그리스도께 속할 때 성령의 선물에 참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전자는 성령 없는 하급 신자를 의도한다거나 후자는 성령의 현재적 사역을 부정한다고 단순화하면 공정하지 않다.
차이를 검토할 때는 사마리아 사건의 지연과 고넬료 집의 동시성, 에베소 사람들의 불충분한 이해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성령 세례와 계속되는 충만을 어떻게 연결하는지도 물어야 한다. 어느 전통의 용어를 택하든 사람이 은혜의 주인이 되거나, 다른 이의 구원 여부를 자신의 체험 형식 하나로 마음대로 판정할 수 있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방언과 공동체의 열매를 함께 살핀다
2장의 언어는 여러 지역 사람이 자기 말로 듣는 현상과 연결되며, 10장과 19장에도 방언이 기록된다. 그러나 사마리아에서 성령을 받았을 때 같은 현상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오순절의 일부 교단은 방언을 성령 세례의 최초 표지로 고백하고 다른 전통은 모든 신자에게 동일하게 요구하지 않는다. 각 입장은 사도행전뿐 아니라 고린도전서의 은사와 공동체 가르침까지 함께 설명할 과제가 있다.
누가는 믿는 이들이 재산을 나누고, 다른 배경의 형제를 받아들이며, 두려움 속에서도 말씀을 전하고, 공동체의 불공정을 바로잡는 모습도 보여 준다. 외적 현상을 무조건 무시할 이유는 없지만 그것만을 성령의 유일한 열매로 세워서도 안 된다. 성령을 구하는 기도는 더 뛰어난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는 경쟁보다 예수를 증언하고 이웃을 책임 있게 섬길 힘을 구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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