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6:17~27

분별과 동역을 거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앞의 인사말은 서로를 받아들이는 복음의 관계를 보여 주었습니다. 마지막 단락은 그 관계를 무너뜨리는 가르침을 경계하고, 바울 곁의 동역자들에게서 인사를 전한 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환대와 분별이 함께 편지의 결론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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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인사말은 서로를 받아들이는 복음의 관계를 보여 주었습니다. 마지막 단락은 그 관계를 무너뜨리는 가르침을 경계하고, 바울 곁의 동역자들에게서 인사를 전한 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환대와 분별이 함께 편지의 결론을 이룹니다.

1. 받아들임과 무분별한 승인은 다릅니다

16:17~18은 배운 가르침을 거슬러 분열과 걸림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살피고 피하라고 권합니다. 14~15장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라고 했던 바울이 갑자기 모든 차이를 배척하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는 주를 섬기려는 사람들의 음식과 날에 대한 양심 차이를 다뤘습니다. 여기서는 복음의 가르침을 거슬러 공동체를 속이고 해치는 활동을 다룹니다.

그 사람들의 특징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대신 자신의 욕구를 섬기며, 듣기 좋은 말과 아첨으로 순진한 이들을 속인다는 데 있습니다. 바울은 상대의 취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멀리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가르침의 내용과 섬김의 방향,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함께 분별의 대상입니다. 유창한 말이나 호감 가는 인상이 그 가르침의 진실성을 보증하지 않습니다.

이 경고를 적용할 때에는 의견이 다른 모든 사람을 거짓 교사라고 부르는 단순화를 피해야 합니다. 누가 어떤 내용을 왜 가르치는지, 그것이 사람을 그리스도께 향하게 하는지 아니면 지도자 자신의 이익에 묶는지 사실을 살펴야 합니다. 바울의 경고를 비판을 막는 도구로 사용하면 오히려 자기 욕구를 섬기는 위험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2. 선에 지혜롭고 악에 순전한 사람

16:19은 로마 성도들의 순종이 알려졌다는 사실을 기뻐하면서, 선에 대해서는 지혜롭고 악에 대해서는 순전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이는 악의 위험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두라는 요청이 아닙니다. 바로 앞에서 속이는 말에 주의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선을 실천할 능력과 악에 물들지 않는 방향을 함께 요청합니다.

어떤 잘못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는 일과 그 잘못의 방식에 능숙해지는 일은 다릅니다. 사람을 속이는 기술을 이해하여 자신을 보호할 수는 있지만, 그 기술을 똑같이 사용해 이기려는 태도는 다른 문제입니다. 12:21에서 악을 선으로 이기라고 했던 권면이 여기에서도 생각납니다. 복음의 분별은 적대적인 영리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이라는 말도 맹목적으로 특정 인간을 따르는 태도로 줄이지 않아야 합니다. 편지 첫머리와 마지막의 믿음의 순종은 복음에 응답하여 하나님께 속하는 삶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독자들이 자신의 모든 말에 무비판적으로 감탄하기보다, 배운 복음과 선에 대한 지혜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독학의 깊이도 이런 책임 있는 분별로 이어져야 합니다.

3. 평강의 하나님이 악을 이기신다는 약속

16:20은 평강의 하나님이 사탄을 성도들의 발 아래에서 무너뜨리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평강과 악의 패배가 한 문장에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이 구하는 평화는 악을 덮어 둔 채 갈등이 없는 척하는 상태가 아닙니다. 공동체를 속이고 분열시키는 악이 최종적인 주인이 아니라는 소망입니다.

이 이미지를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사탄이라고 부르며 공격할 권리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승리의 주체는 하나님이며, 바로 앞의 권면은 선에 지혜롭고 악에 순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 방향은 원수 사랑과 공적 책임, 서로를 세우는 사랑을 통해 이미 설명되었습니다. 종말의 승리라는 표현이 그 모든 권면을 취소하지 않습니다.

속히라는 시간 표현을 오늘의 특정 사건이나 날짜와 직접 연결할 근거도 없습니다. 이 약속은 악을 참아 주라는 무기력과 스스로 모든 결과를 통제하려는 조급함을 함께 교정합니다. 성도들은 악을 분별하고 그 영향에서 자신을 지키면서 하나님이 이루실 결말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은혜의 인사는 그 싸움이 자기 힘만의 과제가 아님을 기억하게 합니다.

4. 바울 곁의 사람들과 편지가 쓰인 실제 과정

16:21~23에는 디모데, 누기오, 야손, 소시바더, 더디오, 가이오, 에라스도, 구아도가 인사를 전합니다. 이들은 앞의 로마 수신자들에게 인사받는 명단과 구분됩니다. 편지를 보내는 자리에도 여러 동역자가 있으며 바울의 복음은 혼자만의 사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협력과 환대 안에서 전달되고 있습니다.

더디오는 자신이 이 편지를 썼다고 직접 인사합니다. 이를 근거로 더디오가 로마서의 신학을 독자적으로 만들었다고 결론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바울의 편지에 필기자가 참여했다는 실제 제작 과정을 보여 줍니다. 반대로 이 사실을 불편하게 여기며 편지의 인간적 전달 과정을 지워 버릴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태도와 당시 편지 작성의 실제를 살피는 일은 양립할 수 있습니다.

가이오의 환대, 에라스도의 공적 역할, 구아도를 부르는 형제의 말은 서로 다른 사회적 자리를 한 인사 안에 놓습니다. 특정 이름을 다른 역사 자료나 다른 성경 인물과 연결하는 연구는 가능하지만, 동명이인이 있을 수 있으므로 확인되지 않은 생애를 사실처럼 덧붙여서는 안 됩니다. 이 본문에서 분명한 것은 각 사람이 복음의 관계망 안에서 기억된다는 점입니다.

5. 16:24가 비어 있는 성경을 만날 때

어떤 성경에서는 16:24에 내용이 없다는 표시가 있거나 각주가 붙어 있습니다. 다른 성경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비는 인사가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독자가 들고 있는 파일에서 우연히 문장이 빠진 경우와 다릅니다. 이 인사의 포함 여부가 필사본 전통에 따라 달라 번역본이 그 차이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송영의 위치에도 필사본 전통의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현대 번역은 16:25~27에 두지만, 일부 전통에서는 14장이나 15장의 끝과 연결되어 전해집니다. 이 교재는 한국 성경에서 널리 쓰는 번호에 따라 14장을 23절까지, 마지막 송영을 16:25~27로 안내합니다. 다른 번역에서 번호나 위치가 달라도 같은 내용을 대조하며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곧바로 성경 전체가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이나 아무 차이도 없다는 부인으로 처리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본문 비평은 전해진 사본과 번역의 차이를 숨기지 않고 비교하는 작업입니다. 여기의 차이는 편지의 끝을 어떻게 전승했는가와 관련되며, 앞서 살펴본 로마서의 긴 논증을 독자 마음대로 바꾸는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각주를 차분히 읽으면 차이의 실제 범위를 알 수 있습니다.

6. 마지막 찬양이 편지의 첫머리를 다시 잇습니다

16:25~27은 하나님이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를 통해 독자들을 굳게 세우실 수 있다고 찬양합니다. 오래 감추어졌던 비밀이 이제 드러났다는 말은 몇 사람만 알아야 할 숨은 암호를 만들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언의 기록들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 알려지고 믿음의 순종을 향한다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숨은 정보의 독점보다 공개된 복음의 확장이 중심입니다.

1:1~7의 복음, 예언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 모든 민족, 믿음의 순종이라는 주제들이 마지막에서 다시 모입니다. 이 반복은 로마서를 따로 떨어진 교리 문장들의 모음보다 하나의 방향을 가진 편지로 읽게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죄 아래 있던 사람을 은혜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살게 하며, 서로 다른 배경의 이들이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마지막 영광의 대상은 바울의 지혜나 독자의 성취가 아니라 지혜로우신 하나님입니다. 로마서를 깊이 공부할수록 다른 이를 판단할 지식만 늘어난다면 편지의 방향을 놓친 셈입니다. 공부는 자랑의 자리를 낮추고 소망을 깊게 하며 사랑의 책임을 구체화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온 독자는 이제 로마서를 다시 읽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의 믿음과 관계를 어떻게 붙들고 있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서로를 받아들이는 공동체는 복음을 거스르며 사람을 속이는 활동도 분별해야 합니다.
  • 필기자와 동역자의 인사, 필사본의 차이는 편지가 실제로 작성되고 전승된 과정을 보여 줍니다.
  • 마지막 찬양은 복음과 모든 민족의 믿음의 순종이라는 첫머리의 주제를 다시 모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함께 생각해요

14장의 환대와 16장의 경계는 왜 모순되지 않습니까?

설명 보기

14장은 주를 섬기려는 이들의 양심과 실천 차이를 다루고, 16장은 가르침을 거슬러 자신의 욕구를 위해 공동체를 속이고 무너뜨리는 활동을 다룹니다. 서로 다른 문제를 구분해야 합니다.

함께 생각해요

로마서 끝의 찬양이 1:1~7을 어떻게 다시 잇습니까?

설명 보기

복음, 예수 그리스도, 예언의 증언, 모든 민족, 믿음의 순종이 다시 나타납니다. 편지 전체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향으로 모입니다.

함께 읽는 성경

  • 로마서 1:1~7: 마지막 송영에서 되돌아오는 핵심 주제들을 직접 대조할 수 있습니다.
  • 로마서 11:33~36: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하는 앞선 송영과 함께 읽으며 배움이 예배로 이어지는 방향을 살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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