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7:1~6

율법으로부터 풀려나 하나님께 열매 맺다

6장은 죄의 지배에서 해방된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과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바울은 죽음이 법적 관계를 바꾼다는 원리와 혼인 비유를 통해 새로운 소속을 설명합니다.

약 5분깊이 읽는 성경
편안하게 읽기

6장은 죄의 지배에서 해방된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과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바울은 죽음이 법적 관계를 바꾼다는 원리와 혼인 비유를 통해 새로운 소속을 설명합니다.

율법을 안다는 전제와 죽음의 원리

7:1에서 바울은 법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권한을 가진다는 점을 말합니다. 여기서 법을 아는 이들이라는 표현을 모든 수신자가 유대인이라는 증거로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로마 교회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있었고, 성경의 가르침을 아는 이방인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법적 관계를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사실입니다. 앞 장의 죽음과 해방이라는 언어가 법의 권한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이어집니다.

이 짧은 단락을 읽을 때에는 율법이 나쁘기 때문에 버려야 한다는 결론부터 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바로 뒤 7:7~12에서 바울은 율법이 죄가 아니며 거룩하고 선하다고 강조합니다. 질문은 율법의 가치가 아니라, 죄 아래 있는 사람과 율법의 관계가 어떤 결과를 내는가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지만 죄에 붙잡힌 사람에게 그 뜻을 이룰 능력을 자동으로 주지는 않습니다. 이 구분을 지켜야 6절의 해방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혼인 비유가 설명하는 것과 설명하지 않는 것

2~3절은 남편이 살아 있을 때와 죽은 뒤를 비교합니다. 당시 독자가 이해하는 혼인 관계에서 죽음은 기존의 법적 결속을 끝내고 새로운 관계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바울은 그 법적 변화를 사용하여 신자의 이전 소속이 끝났음을 설명합니다. 이 대목의 목적은 결혼과 이혼에 관한 모든 경우를 정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혼인 비유의 한 요소를 떼어 오늘의 복잡한 혼인 문제 전체를 판정하는 규정으로 사용하면 단락의 논증에서 벗어납니다.

비유의 요소를 하나하나 정확히 대응시키려 하면 어려움이 생깁니다. 예에서는 남편이 죽지만 적용에서는 신자들이 죽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죽은 남편, 신자를 아내, 그리스도를 새 남편으로 고정한 다음 모든 세부를 설명하려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비유의 중심은 죽음이 이전 관계의 구속력을 끝내고 새 관계를 연다는 원리입니다. 바울은 그 원리를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한 신자의 변화에 적용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달라진 소속

4절의 그리스도의 몸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와 연결해 읽습니다. 신자는 그분의 죽음에 속함으로 율법이 정죄하고 죄가 악용하던 옛 질서에 대해 죽었습니다. 이 말은 자신에게 유리한 규정을 골라 무시할 권한을 얻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문은 곧바로 부활하신 분께 속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해방에는 새 주인이 있으며, 그 주인은 죽음을 이기고 살아 계신 그리스도입니다.

이 변화의 목적은 하나님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6장의 거룩함이라는 열매가 여기에서도 이어집니다. 바울은 옛 결속을 끊는 설명을 한 뒤 자유 자체를 최종 목적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서 실제로 선을 행하는 삶이 목적입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도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새롭게 가능하게 합니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가와 함께 누구에게 속하고 무엇을 위해 자유로운가를 물어야 합니다.

육신에 있을 때의 열매

5절은 이전 상태를 육신에 있었을 때라고 부릅니다. 육신을 단순히 몸이나 성적 욕망으로만 좁히면 바울의 대조가 작아집니다. 여기서는 죄의 지배 아래서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 상태에서 죄의 욕망은 계명을 기회로 삼아 몸의 지체 안에서 작동했고 죽음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 설명은 몸이 악하다는 판단보다 죄가 사람 전체를 붙잡는 방식을 드러냅니다.

율법을 통해 욕망이 일어났다는 표현도 율법이 악을 만들어 낸 유일한 원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음 단락은 죄가 계명을 발판으로 삼았다고 설명합니다. 해야 할 일을 더 분명히 알게 되었는데도 더 완고하게 거역하는 현실이 있습니다. 금지가 탐욕을 드러내고 자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실패의 원인을 선한 기준 자체에 돌리면 죄의 작용을 놓칩니다. 바울은 율법의 선함과 인간을 지배하는 죄의 파괴력을 동시에 설명하려 합니다.

문자의 옛 방식과 성령의 새 방식

6절의 대조는 글로 적힌 모든 가르침과 종교적 감동을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자라는 말을 성경 본문을 읽는 일 자체의 반대로 삼으면, 바울이 편지 전체에서 성경을 인용하는 사실과도 맞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율법의 조문 아래 놓인 옛 상태와 성령이 주시는 새 삶의 차이를 말합니다. 기준을 알고 정죄받는 데서 끝나는 삶과, 하나님이 사람을 새롭게 하셔서 섬기게 하는 삶이 대조됩니다.

새로움의 목적도 섬김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검토나 성경의 판단을 피하는 자율성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바른 규칙을 더 많이 알고 엄격하게 적용하는 일만으로 사람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바울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새 관계를 말합니다. 성경의 뜻을 이해하고 기도하며 공동체 안에서 순종을 배우는 일은 이 새 관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율법의 존중과 옛 지배로부터의 해방

이 본문을 유대교 전체는 죽은 문자이며 기독교만 살아 있는 영이라는 평가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유대인의 성경을 자신의 복음 논증의 근거로 사용하며, 9~11장에서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과 부르심을 진지하게 다룹니다. 그가 다루는 것은 특정 민족의 열등함이 아니라 죄 아래 놓인 인간과 하나님의 구원 행동입니다. 어느 종교적 집단에 속했는가만으로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 문제에서 면제되지 않습니다.

오늘의 독자는 자신의 신앙이 정죄와 비교를 반복하는 데서 멈추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규칙을 버리는 것과 규칙으로 자신의 의를 세우는 것 사이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께 속하여 성령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제시합니다. 실패를 보았다면 기준을 낮추거나 자신의 가치를 끝없이 공격하기보다, 자신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 돌아가 실제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7장의 다음 단락은 왜 선한 기준만으로 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지 더 깊이 설명합니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죽음이 옛 법적 결속을 끝낸다는 원리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적용됩니다.
  • 율법에서의 해방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속하여 하나님께 열매 맺게 합니다.
  • 성령의 새 방식은 성경의 폐기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삶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함께 생각해요

혼인 비유의 모든 세부를 일대일로 대응시키면 왜 어려워지나요?

설명 보기

예에서는 남편이 죽고 적용에서는 신자가 죽으므로 세부가 그대로 대응하지 않습니다. 죽음이 이전의 구속력을 끝내고 새로운 관계를 연다는 공통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함께 생각해요

문자의 옛 방식이라는 표현을 성경 공부의 반대로 읽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요?

설명 보기

바울 자신이 성경을 근거로 논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대조의 중심은 글자와 감정이 아니라 죄 아래의 옛 상태와 성령이 주시는 새 섬김입니다.

함께 읽는 성경

  • 고린도후서 3:4~6: 새 언약과 성령의 사역을 함께 살피되 각 편지의 문맥을 구별합니다.
  • 예레미야 31:31~34: 하나님의 뜻이 공동체의 내면과 삶에 새겨지는 약속을 배경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읽는 곳은 이 기기와 브라우저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