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와 의롭다 하심을 함께 읽기
하나님의 의를 읽을 때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라는 질문과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함께 나옵니다. 3:25~26은 하나님 자신의 의로우심과 믿는 사람을 의롭다 하시는 일을 연결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사람에게 요구하는 완전한 도덕 수준으로만 이해하면,…
같은 단어가 연결하는 서로 다른 질문
하나님의 의를 읽을 때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라는 질문과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함께 나옵니다. 3:25~26은 하나님 자신의 의로우심과 믿는 사람을 의롭다 하시는 일을 연결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사람에게 요구하는 완전한 도덕 수준으로만 이해하면, 그 의가 복음 안에서 구원의 소식으로 드러난다는 설명을 충분히 읽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인간에게 주어진 유익만 생각하면 하나님 자신의 신실하심과 공의가 흐려질 수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은 법정의 언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8:33~34에서 고발과 정죄가 대조되는 것은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받아들이시는 판결과, 그 뒤에 실제 삶이 새로워지는 일을 구분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분을 두 일이 무관하다는 뜻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로마서의 같은 독자는 3~4장에서 의롭다 하심을 듣고 6~8장에서 새 삶을 듣습니다.
대표적인 강조점을 비교하기
종교개혁 전통의 설명은 죄인이 자기 공로로 설 수 없으며 그리스도에 근거하여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강조는 3:23~28과 4:4~8의 죄·선물·삯의 대조를 잘 드러냅니다. 언약과 유대인·이방인의 관계를 강조하는 해석은 3:29~30과 4장의 아브라함 논증에 주목하며, 하나님의 의가 약속에 대한 신실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묻습니다. N. T. Wright의 칭의 설명은 이런 언약과 법정의 연결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자료 가운데 하나입니다.
두 강조를 아무 차이 없이 합쳐 버리면 실제 쟁점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을 어디까지 구원의 선물과 동일하게 말할 수 있는지, 의롭다 하심과 언약 백성의 소속을 어떤 순서로 설명하는지에서 차이가 생깁니다. 이 책은 한 단어만으로 모든 문제를 결정하기보다, 하나님 자신의 의로우심, 그리스도를 통한 죄인의 받아들여짐,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열린 동일한 길을 각 문맥에서 확인하는 방법을 권합니다.
독자가 확인할 두 가지
먼저 3:21~26에서 행동의 주체를 표시해 보십시오. 사람의 성취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신 일이 중심에 놓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3:27~31에서 그 일이 인간의 자랑과 민족 간 경계에 어떤 결과를 낳는지 살피십시오. 개인의 구원과 공동체의 관계를 함께 읽으면 논증의 폭을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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