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30~10:21

가까이 온 말씀을 믿고 주를 부르다

9장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부르심을 강조했다면, 이어지는 단락은 사람이 복음에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다룹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열심을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문제가 남아 있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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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부르심을 강조했다면, 이어지는 단락은 사람이 복음에 어떻게 응답하는지를 다룹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열심을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문제가 남아 있다고 설명합니다.

추구하지 않던 이들이 의를 얻는 역설

9:30~33은 앞 논증의 놀라운 결과를 정리합니다. 의를 추구하지 않던 이방인이 믿음의 의를 얻었고, 의의 율법을 추구하던 이스라엘은 그 목표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은 본래 더 선하고 유대인은 본래 더 나쁘다는 민족적 평가를 내리지 않습니다. 1~3장은 모두가 죄 아래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여기의 대조는 의를 얻는 근거와 길에 있습니다. 자기 행위를 권리의 근거로 삼는 방식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대비됩니다.

걸림돌의 이미지는 이사야의 본문들을 함께 불러옵니다. 하나님이 시온에 놓으신 돌은 사람을 지탱하는 근거가 되지만, 그것을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됩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자랑을 그대로 확인해 주는 종교적 장식이 아닙니다. 그분을 신뢰하려면 자신이 이미 확보했다고 여기는 지위와 성취를 최종 근거로 붙들지 않아야 합니다. 이 질문은 당시 이스라엘만을 향하지 않습니다. 오래 믿었다는 경력과 바른 지식을 자기 의의 증거로 삼는 오늘의 신자에게도 적용됩니다.

열심은 왜 지식과 함께 가야 하는가

10:1에서 바울은 동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합니다. 9장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강하게 말한 사람이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의 응답을 말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기도와 증언을 쓸모없게 하지 않습니다. 2절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바울은 상대의 모든 동기와 노력을 위선으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열심이 있다는 사실과 그 열심의 방향을 비판하는 일을 함께 수행합니다.

3절에서 문제는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 의를 세우려 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진지한 종교적 행동도 하나님이 하신 일에 자신을 맡기는 응답과 다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유대교 전체를 단순한 공로 계산의 종교로 요약하는 데 이 문장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반응을 논하는 특정 논증 안에 있습니다. 오늘의 적용에서도 남의 종교를 평가하기 전에, 내가 열심의 크기를 근거로 하나님의 판단을 대신하려 하는지 먼저 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인가 목표인가

4절의 그리스도가 율법의 끝이라는 표현은 중요한 번역·해석 쟁점입니다. 끝은 종료를, 또는 어떤 과정이 향해 가는 목표와 완성을 뜻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 자기 의를 확보하는 옛 방식이 그리스도 안에서 끝났다는 강조와, 율법의 의도와 약속이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다는 강조가 있습니다. 두 뜻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지는 논의가 있지만, 바울이 곧바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가 주어진다고 말하는 점이 문맥의 중심을 정합니다.

율법의 끝을 하나님의 성품과 도덕적 뜻이 모두 폐기되었다는 의미로 읽으면 3:31과 8:4, 13:8~10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에 아무 변화가 없다는 뜻으로만 읽어도 7장의 해방과 새 섬김을 약화시킵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분도 단지 기존 체계를 더 잘 수행한 한 사례도 아닙니다. 바울에게 그분은 의를 얻는 결정적 근거이며, 율법과 약속을 새롭게 이해하게 하는 분입니다. 종료와 성취라는 번역 중 하나만 보고 성급히 전체 결론을 내리지 않아야 합니다.

레위기와 신명기를 함께 읽는 방법

5절에서 레위기의 행하면 산다는 말이 나오고, 6~8절에서는 신명기의 말씀이 마음과 입에 가까이 있다는 언어가 나옵니다. 바울은 구약을 한편에는 행위만 있고 다른 편에는 믿음만 있는 서로 무관한 책들로 분리하지 않습니다.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사람이 하늘이나 바다를 건너 가져와야 할 먼 비밀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 가까움을 그리스도 사건과 연결하여, 사람이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끌어 내리거나 죽음에서 다시 가져올 필요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아들을 보내시고 죽음에서 살리셨으므로 구원의 결정적 일을 인간이 다시 수행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사람이 불가능한 일을 완수해 하나님께 길을 여는 업적이 아니라 이미 이루신 복음을 받아들이는 응답입니다. 여기서 구약 인용은 원래 문맥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재해석을 구분하여 읽어야 합니다. 바울이 처음부터 신명기의 모든 문장을 로마서의 표현과 똑같은 의미로 읽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가까워졌는지 설명합니다.

마음의 믿음과 입의 고백

9~10절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음을 믿는 응답을 말합니다. 마음과 입은 구원을 얻기 위한 서로 분리된 두 기술이라기보다 안과 밖을 함께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예수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고백과 연결됩니다. 소리를 정확히 한 번 내면 마음의 방향과 무관하게 구원이 자동 보장된다는 주술적 공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믿음이 단지 개인의 내적 생각이므로 공개적인 소속과 순종은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11~13절은 누구든지라는 범위를 강조합니다.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같은 주님이 계시며 그분을 부르는 이들에게 풍성하십니다. 요엘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약속을 예수에 대한 고백과 연결하는 흐름도 중요합니다. 신자는 하나님께 접근할 자격을 민족적 우월이나 종교적 혈통에서 찾지 않습니다. 다만 믿음을 고백할 자유가 제한되거나 말을 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발성의 조건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의 관심은 같은 주님께 열린 구원의 길이지 사람의 언어 능력을 시험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보냄, 전함, 들음, 믿음의 연결

14~15절은 구원의 응답이 이루어지는 통로를 역순의 질문으로 보여 줍니다. 주를 부르려면 믿어야 하고, 믿으려면 들어야 하며, 들으려면 전하는 이가 있어야 하고, 전하는 이는 보냄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행동과 인간의 선포는 경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통해 듣는 이에게 다가가십니다. 그러므로 선택에 관한 논의가 복음 전할 책임을 지우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의 논증 자체가 보내심과 선포의 필요를 설명합니다.

16~17절은 전해졌다고 모두가 믿은 것은 아니라는 현실도 인정합니다.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는 말을 같은 문장을 많이 재생하면 자동으로 믿음이 생긴다는 학습 기술로 바꿀 수 없습니다. 들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들은 사람의 응답이 문제로 남습니다. 전하는 사람에게는 복음을 분명하고 신실하게 전할 책임이 있지만, 타인의 반응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할 권한은 없습니다. 이 구별은 선포의 책임과 듣는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함께 지키게 합니다.

그렇다면 듣지 못했기 때문인가

18~21절은 이스라엘이 듣지 못했는지, 알지 못했는지를 질문하고 성경을 인용해 답합니다. 시편의 온 땅에 퍼지는 소리, 신명기의 시기, 이사야의 찾아오심과 거절이 이어집니다. 시편의 우주적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당시 모든 개인이 이미 같은 방식으로 복음을 들었다는 통계적 보고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바울은 복음이 널리 선포되었고 이방인의 부르심도 성경의 전망 밖에서 일어난 일이 아님을 성경의 언어로 논증합니다.

마지막은 불순종한 백성을 향해 손을 내미시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끝납니다. 인간의 거절은 실제이며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도 실제입니다. 9장의 주권과 10장의 책임을 서로 취소하는 명제로 만들기보다 이 둘이 함께 놓인 편지의 논증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책임이 있다는 설명을 그 민족의 영구적인 폐기로 바꾸어도 안 됩니다. 바로 다음 장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는지를 다시 묻고 강하게 부정합니다. 바울의 문장을 그가 이어 쓰는 문장까지 함께 읽어야 합니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그리스도는 자기 의를 세우는 길을 끝내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의의 근거가 되십니다.
  • 믿음과 고백은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응답하는 안팎의 모습입니다.
  • 보내심과 선포, 들음과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 행동 안에서 서로 연결되며 인간의 책임을 드러냅니다.
함께 생각해요

10:9~10을 정확한 말을 한 번 하면 되는 공식으로 읽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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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믿음과 입의 고백이 함께 나오며 그 내용이 예수의 주 되심과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발성 기술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신뢰와 소속의 응답입니다.

함께 생각해요

하나님의 선택을 말한 뒤 복음 선포의 필요를 말하는 흐름은 무엇을 보여 주나요?

설명 보기

바울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증언은 서로를 지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보내신 사람의 선포와 듣는 사람의 응답을 통해 구원의 일을 이루십니다.

함께 읽는 성경

  • 신명기 30:11~14: 가까이 주어진 말씀이라는 원래 문맥과 바울의 그리스도 중심 적용을 나누어 살핍니다.
  • 요엘 2:28~32; 이사야 52:7: 주의 이름을 부르는 구원과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걸음의 약속이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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