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일꾼을 봅니다
성령의 지혜를 설명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실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영적이라는 자부심과 달리 시기와 분쟁은 아직 자라야 할 모습을 드러냅니다.
성령의 지혜를 설명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실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영적이라는 자부심과 달리 시기와 분쟁은 아직 자라야 할 모습을 드러냅니다.
성숙은 무엇으로 확인되는가
3:1에서 바울은 독자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아이로 부릅니다. 그리스도 밖이라고 곧바로 내쫓지 않으면서도 영적인 사람답게 행동하지 못한다고 책망합니다. 이 대조를 모든 신자를 영구적인 세 계층으로 나누는 도식으로 고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울의 관심은 특정 계급의 이름을 붙이는 데 있지 않고,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고백에 걸맞게 자라고 있는지를 묻는 데 있습니다.
3:2의 젖과 단단한 음식도 초급 교리와 별개의 비밀 교리를 구별하는 목록이 아닙니다.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라고 설명했습니다. 같은 복음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해 삶의 판단이 달라지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더 많은 정보를 아는 일은 중요하지만, 아는 내용이 시기와 경쟁을 줄이지 못한다면 성숙의 증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장의 문제는 지식의 양과 관계의 태도를 함께 포함합니다.
육신에 속함을 드러내는 분쟁
3:3~4에서 바울이 제시하는 증거는 시기와 다툼, 사람의 이름에 매인 구호입니다. 육신적이라는 말을 몸의 욕망이나 성적인 문제에만 제한하면 이 책망을 놓칩니다. 종교적인 열심과 풍성한 은사를 가졌어도 사람을 비교하고 자기 집단을 높이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영적이라는 말의 진실성은 실제 관계에서 검토되어야 합니다.
바울을 따른다는 말도 아볼로를 따른다는 말도 같은 문제의 표지입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쪽에는 관대한 이중 기준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갈라진 이유를 어느 지도자의 품질 차이로만 분석하면 더 근본적인 자기 자랑이 가려집니다. 복음을 함께 받은 사람을 경쟁하는 지위의 대상으로 보는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바울이 다음 질문에서 사람의 평가보다 일꾼의 역할로 시선을 옮기는 이유입니다.
믿게 된 통로와 믿음의 주인은 다릅니다
3:5는 아볼로와 바울을 성도들이 믿게 된 통로인 일꾼들로 설명합니다. 주님이 각 사람에게 맡기신 역할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씨 뿌림과 아볼로의 물 주기는 서로 다른 시기의 실제 사역을 가리키며 어느 하나를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자라게 된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일꾼의 수고를 인정하는 일과 그 사람을 생명의 주인으로 높이는 일은 구별됩니다.
아볼로의 가르침이 바울과 완전히 다른 복음이었다고 이 비유는 말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역할은 같은 밭을 섬기는 연속적인 일로 제시됩니다. 자기 교사의 표현만 복음으로 인정하고 다른 통로를 무시하는 태도는 그 밭의 주인이 누구인지 잊게 합니다. 오늘의 공동체도 과거의 창립자와 현재의 지도자를 대립시키기보다, 각각의 수고를 살리면서 생명의 근원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같은 목적과 각자의 책임
3:7~8에서 씨 뿌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은 하나님과 비교하여 중심 자리를 내려놓습니다. 그렇다고 개인의 수고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각자가 자기 수고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고 덧붙입니다. 같은 목적을 섬긴다는 사실과 각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 함께 있습니다. 결과를 독점적으로 자랑할 수도 없고, 성장의 주체가 하나님이니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보상은 사람의 인기를 그대로 하늘의 등급으로 옮기는 개념이 아닙니다. 다음 단락은 무엇으로 어떻게 세웠는지가 드러날 날을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규모만으로 일꾼의 수고를 다 판단하기 어렵다는 뜻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결과의 불확실성 때문에 책임을 포기하지 않으며, 눈에 띄는 성과가 있다고 해서 자신이 하나님보다 중요해졌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수고에 따른 보상이라는 말도 회심한 사람의 숫자만 세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씨 뿌림과 물 주기는 결과가 드러나는 시점과 모양이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앞에 보이는 결실의 공로를 독점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각각이 맡아 감당한 수고를 아십니다. 그래서 공동체는 드러난 사역과 드러나지 않은 준비를 함께 존중할 수 있습니다.
밭과 건물의 소유를 기억합니다
3:9에서 독자들은 하나님의 밭과 건물로 불립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표현은 일꾼들이 하나님께 속하여 함께 일한다는 뜻을 강조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다는 뜻을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하나님과 사람이 같은 크기의 공동 소유자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복되는 하나님의라는 소속이 문장의 무게 중심입니다. 공동체도 사역자도 하나님께 속합니다.
이 소속을 기억하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교인은 지도자의 성과를 위한 재료가 아니고 지도자는 취향에 따라 갈아 끼우는 소비재가 아닙니다. 서로 맡은 역할을 존중하면서도 최종 신뢰와 소유권은 하나님께 둡니다. 교회가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밭이 되지 않도록 살피는 일은 모든 신자의 책임입니다. 다음 단락의 건축 비유는 그 책임의 내용과 최종 검증을 더 선명하게 펼칩니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시기와 분파는 영적인 자부심과 달리 아직 자라야 할 공동체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 바울과 아볼로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은 일꾼이며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 하나님께 속한 공동체를 섬기는 사람은 수고를 인정받되 소유권과 최종 영광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젖과 단단한 음식의 비유를 단순한 성경 지식의 양으로만 볼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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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좁히기 어렵습니다. 바울이 미성숙의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시기와 다툼입니다. 복음의 앎이 관계와 판단을 바꾸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면 일꾼의 수고는 중요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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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서로 다른 사역을 인정하고 각자의 수고에 따른 책임과 보상을 말합니다. 수고는 필요하지만 생명의 근원과 영광을 독점하지 못합니다.
함께 읽는 성경
- 요한복음 15:1~8: 생명의 근원에 붙어 있는 것과 실제 열매를 맺는 책임을 함께 살핍니다.
- 고린도전서 12:12~27: 다른 역할과 같은 소속의 관계가 몸의 비유로 더 자세히 설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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