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7:1~40; 마가복음 10:2~12; 마태복음 19:3~12

결혼과 독신, 명령과 판단의 구별

7장에는 주님의 명령, 사도적 판단, 허락과 유익에 관한 조언이 함께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경우든 한 가지 생활 상태만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직접 가르치신 혼인의 신실함을 상기시키고, 신앙이 다른 배우자와의 결혼처럼 새 상황에는 그 복음에 따른 판단을 내립…

약 3분깊이 읽는 성경
편안하게 읽기

서로 다른 말의 형식을 읽습니다

7장에는 주님의 명령, 사도적 판단, 허락과 유익에 관한 조언이 함께 있습니다. 바울은 어떤 경우든 한 가지 생활 상태만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직접 가르치신 혼인의 신실함을 상기시키고, 신앙이 다른 배우자와의 결혼처럼 새 상황에는 그 복음에 따른 판단을 내립니다. 이 구별은 어떤 문장은 성경이고 다른 문장은 무시해도 된다는 뜻보다, 권면의 내용과 적용 범위를 정확히 읽도록 돕습니다.

현재의 환난과 각 사람의 은사, 관계의 책임이 조언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결혼하지 말라는 유익의 권면을 모든 시대의 절대 금지로 바꾸거나, 결혼은 죄가 아니라는 설명을 모든 형편의 무조건적인 권장으로 바꾸면 안 됩니다. 성경을 따르는 일에는 명시된 원칙뿐 아니라 그 원칙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살피는 지혜가 포함됩니다.

상호성은 권리의 독점을 흔듭니다

7:3~5에서 남편과 아내의 몸과 책임은 같은 구조로 설명됩니다. 한쪽의 욕망만 권리가 되고 다른 쪽의 필요는 사라지는 관계와 다릅니다. 일시적 금욕에도 상호 동의와 목적과 기간이 언급됩니다. 하나님께 집중한다는 이유로 배우자의 처지를 무시하거나 성적 관계를 통제와 보복의 도구로 삼지 못하게 합니다. 상호 권한이라는 말은 강요보다 서로를 돌보는 책임으로 읽어야 합니다.

7:32~35에서 바울은 결혼한 이가 배우자를 돌봐야 할 실제 관심을 인정하고 독신의 집중 가능성을 말합니다. 가족을 돌보는 일이 본래 세속적인 죄라는 뜻은 아닙니다. 독신도 결핍과 미성숙의 표시가 아닙니다. 교회는 어느 처지를 정상의 기준으로 높여 다른 이를 주변에 두기보다, 각자가 신실하게 주님을 섬길 관계와 시간을 존중해야 합니다. 다른 은사를 인정하는 일은 구체적인 생활 방식에도 필요합니다.

이혼과 떠남을 둘러싼 해석의 쟁점

7:10~16은 결혼을 쉽게 끊지 말라는 원칙과 비신자 배우자의 떠남을 다르게 다룹니다. 15절의 매이지 않는다는 말을 재혼의 자유까지 포함한다고 보는 견해와 이별을 막아야 할 책임의 해제로 좁히는 견해가 있습니다. 개혁 전통의 대표 문헌은 간음과 회복 불가능한 고의적 유기를 이혼과 재혼의 논의에 연결합니다. 다른 전통들은 혼인과 성례에 관한 더 큰 틀 안에서 다른 기준과 절차를 설명합니다.

이 차이를 단지 관대한 교단과 엄격한 교단의 성격 차이로 처리하면 성경과 혼인의 이해에 관한 실제 논쟁이 가려집니다. 모든 사례를 이 장이 직접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특히 폭력과 심각한 위험에 처한 사람의 보호를 배제하는 근거로 혼인의 신실함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의 원칙, 각 전통의 교리적 종합, 구체적 사실의 판단을 구별하며 책임 있게 다루어야 합니다.

지나가는 세상 안에서 신실하게 선택합니다

7:29~31은 관계와 소유, 감정이 모두 최종적이지 않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현실을 포기하는 지시보다 주님께 소속된 사람의 우선순위를 밝힙니다. 배우자를 우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말과 배우자의 필요를 돌보지 않는다는 말은 다릅니다.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소망은 신실한 책임을 지우지 않고 현재의 형편이 자신의 전부라는 불안을 낮춥니다.

판단의 실천에서는 성경에 없는 동기를 임의로 단정하지 않는 일도 중요합니다. 독신을 택한 사람은 이기적이고 결혼을 바라는 사람은 덜 헌신했다는 식의 평가는 본문이 세심하게 구별한 은사와 형편을 지웁니다. 바울은 올가미를 씌우려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깊은 이해는 타인의 선택을 쉽게 통제하는 자신감보다 주님께 충실할 길을 함께 살피는 지혜로 나타나야 합니다.

읽는 곳은 이 기기와 브라우저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