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중심은 지도자의 이름이 아닙니다
은혜의 부르심을 확인한 바울은 곧바로 분열 문제를 다룹니다. 그가 묻는 것은 누구의 실력이 뛰어난가보다 누구의 이름으로 교회가 존재하는가입니다.
은혜의 부르심을 확인한 바울은 곧바로 분열 문제를 다룹니다. 그가 묻는 것은 누구의 실력이 뛰어난가보다 누구의 이름으로 교회가 존재하는가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일치의 요청
1:10의 권면은 바울의 개인적 체면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근거합니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생각과 판단으로 연결되라는 요청은 모든 취향과 의견의 획일화를 뜻하지 않습니다. 곧 다양한 은사를 인정할 편지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서로를 갈라놓는 충성의 언어입니다. 복음을 함께 고백한다면서 사람의 이름으로 경쟁하는 태도가 공동체를 찢고 있습니다.
클로에에게 속한 이들이 전한 소식은 실제 분쟁이 있음을 알리는 통로입니다. 이들이 가족인지 집안의 일꾼인지, 클로에가 어느 지역에 살았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출처를 숨긴 소문으로 공격하기보다 전달된 문제를 공동체 앞에서 다룹니다. 그러나 이 문장을 모든 제보자의 신원을 공개해야 한다는 규칙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 편지의 보고 방식과 모든 상황의 절차는 구별해야 합니다.
네 이름이 드러내는 잘못된 소속
1:12에는 바울, 아볼로, 게바,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말이 나열됩니다. 게바는 베드로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네 개의 조직화된 당파가 정확히 존재했는지, 마지막 표현도 배타적인 무리의 구호인지는 논의가 있습니다. 각 집단의 교리와 민족 구성을 상세하게 재구성할 만큼 정보가 많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도들이 서로 다른 이름을 소속의 자랑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들에게도 우호적으로 편들지 않습니다. 자신의 추종자가 많아지면 교회가 건강해진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볼로와 베드로 역시 이 분열을 의도적으로 조장했다고 본문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도자들의 실제 사역과 그들의 이름을 경쟁적으로 사용하는 신자들의 행동을 구별해야 합니다. 오늘의 독자도 좋아하는 교사와 다른 신자를 낮추는 충성을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십자가와 세례가 누구를 가리키는가
1:13의 질문들은 소속의 잘못을 단번에 드러냅니다. 그리스도를 여러 몫으로 나눌 수 없으며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린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세례 역시 바울의 이름으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중심을 결정하는 것은 어떤 교사에게서 처음 배웠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구원에 참여하고 누구께 속했는가입니다. 십자가와 세례는 사람을 지도자의 사적 소유로 만들 수 없게 합니다.
이 질문이 지도자의 가르침이나 세례를 베푸는 사람의 역할을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복음은 실제 사람을 통해 전해집니다. 다만 통로가 근원이 될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전도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그의 모든 판단에 복종하거나 다른 공동체를 무시하는 태도로 바뀌면 소속이 뒤집힙니다. 지도자도 자신에게 모인 충성을 그리스도에게 돌려야 합니다.
바울의 질문들은 대답을 새로 조사하라는 시험이 아니라 독자들이 이미 아는 복음으로 자신의 행동을 판단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누가 십자가에 달렸는지 알고 있다면 누구에게 최종적으로 속하는지도 분명해집니다. 따라서 분열을 해결하는 길은 가장 강한 지도자의 이름 아래 모두를 모으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함께 받은 구원의 근원으로 돌아가 그 근원이 서로를 대하는 말을 바꾸게 하는 데 있습니다.
세례를 준 사람의 목록이 보여 주는 것
1:14~16에서 바울은 자신이 세례를 베푼 몇 사람을 기억하고 스데바나의 집을 추가합니다. 이 생생한 덧붙임은 그의 관심이 세례 실적을 자랑하는 데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자신이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다면 그 이름을 이용해 분파를 만들 수 있었을 상황을 염두에 둡니다. 세례의 의미가 집례자의 명성에 달린 것처럼 오해되지 않기를 바라는 설명입니다.
스데바나의 집 전체가 언급된다고 해서 그 집의 구성원 나이와 세례 방식까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유아세례와 신자세례의 논쟁을 이 한 문장으로 끝내려 하면 기록되지 않은 정보를 가정하게 됩니다. 본문의 직접적인 논점은 지도자의 이름과 세례를 분리하는 것입니다. 세례에 관한 각 전통의 더 큰 설명은 다른 관련 본문과 함께 검토해야 하며, 여기서는 공동체의 소속이라는 중심을 먼저 읽어야 합니다.
말의 지혜가 십자가를 비울 수 있습니다
1:17에서 바울은 자신이 받은 사명의 중심을 복음 전파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세례를 불필요한 의식으로 폐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를 중요한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가 경계하는 것은 세례나 설교가 사역자의 실력을 과시하는 장치가 되는 일입니다. 복음을 말하는 방식이 복음의 내용을 가리면 십자가의 의미가 약화됩니다.
말의 지혜를 경계한다고 해서 명료한 설명이나 생각의 수고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편지 자체가 치밀한 논증으로 독자를 설득합니다. 문제는 듣는 이가 십자가의 주님보다 연설가의 우월함을 의지하게 되는가에 있습니다. 독자는 무엇이 기억에 남는지만 아니라 누구에게 신뢰를 두게 되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다음 단락은 사람들이 수치로 여기던 십자가가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인지 설명합니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바울은 자신을 따르는 분파까지 거절하며 공동체의 소속을 그리스도께 돌립니다.
- 십자가와 세례는 교회가 어떤 인간 지도자의 소유도 아님을 드러냅니다.
- 복음 전파의 방식은 말하는 사람의 우월함보다 십자가의 의미를 드러내야 합니다.
네 이름을 네 개의 세부 교리 체계와 곧바로 대응시키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설명 보기
본문은 구호와 분쟁을 알려 주지만 각 집단의 조직과 신학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확인된 문제는 사람의 이름으로 소속과 우월함을 주장하는 태도입니다.
1:17은 세례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입니까?
설명 보기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세례가 그리스도께 속함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논증의 근거로 사용합니다. 그는 사역자의 이름과 실적을 자랑하는 잘못을 거절합니다.
함께 읽는 성경
- 고린도전서 3:5~9: 바울과 아볼로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꾼들로 소개됩니다.
- 에베소서 4:1~6: 한 주님과 한 세례에 근거한 공동체의 일치를 함께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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