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의 생명과 현재·미래의 영생
3:3의 아노텐은 다시 또는 위로부터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나는 문제로 듣고 신체적으로 가능한지를 묻습니다. 예수의 설명은 하나님의 영이 주시는 생명을 향합니다. 이 두 층위의 뜻이 대화를 움직이므로 어느 한 번역만 보고 다른 뜻의 가능성이 전혀 …
새로 태어남과 위로부터 태어남
3:3의 아노텐은 다시 또는 위로부터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나는 문제로 듣고 신체적으로 가능한지를 묻습니다. 예수의 설명은 하나님의 영이 주시는 생명을 향합니다. 이 두 층위의 뜻이 대화를 움직이므로 어느 한 번역만 보고 다른 뜻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남에는 세례와 연결하는 읽기, 에스겔 36장의 정결과 새 영의 약속을 강조하는 읽기 등이 있습니다. 자연적 출생과 영적 출생의 대조로 읽는 설명도 있지만, 물의 뜻을 그 당시 문맥과 이스라엘의 선생이라는 3:10의 질문 안에서 설명해야 합니다. 핵심은 인간이 자기 출신이나 지식으로 생명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새롭게 받는다는 점입니다.
영생은 언제 시작되는가
5:24는 믿는 사람이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하고, 5:28~29는 장차 무덤에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 때를 말합니다. 6장도 마지막 날에 일으키심을 반복합니다. 영생의 현재성을 강조한다고 미래의 부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미래를 말한다고 지금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17:3은 영생을 아버지와 보내신 예수를 아는 관계로 설명합니다. 이는 오래 지속되는 시간만을 계산하는 이해를 넓혀 줍니다. 그러나 관계라는 말을 근거로 몸의 부활이나 실제의 미래를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것도 본문의 다른 설명을 줄입니다. 이미 받은 생명과 아직 기다리는 완성을 함께 놓아야 합니다.
일상의 갈증과 생명의 선물
4장의 물은 실제 목마름에서 출발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으로 독자를 이끕니다. 그 장면을 읽으면서 오늘의 모든 욕망을 곧바로 성경의 생수와 같은 범주에 넣기보다, 예수가 자신과 아버지를 어떻게 알려 주시는지 살피십시오. 자기 필요를 채우는 수단으로만 예수를 생각하는 데서 그분의 선물을 받는 관계로 옮겨 가는 것이 대화의 중요한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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