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18; 요한복음 5:19~30; 요한복음 17:1~5; 요한복음 20:28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고백

1:1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말씀의 신성을 말합니다. 이 두 설명 가운데 하나를 지워 읽으면 서문이 만드는 긴장이 사라집니다. 예수를 하나님과 아무 관계 없는 뛰어난 피조물로만 설명하기도 어렵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실제 구별이 없는 이름의 차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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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과 일치를 함께 말하는 서문

1:1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말씀의 신성을 말합니다. 이 두 설명 가운데 하나를 지워 읽으면 서문이 만드는 긴장이 사라집니다. 예수를 하나님과 아무 관계 없는 뛰어난 피조물로만 설명하기도 어렵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실제 구별이 없는 이름의 차이로만 처리하기도 어렵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이 관계를 더 펼칩니다.

5:19에서 아들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설명은 아들이 무능한 존재라는 말로만 읽을 수 없습니다. 같은 문맥은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아들도 행하며 생명과 심판에 관한 권한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의존과 일치, 보내심과 드러내심이 함께 있습니다. 신학적 용어를 먼저 대입하여 한 문장을 나머지 이야기와 분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육신을 입으심은 무엇을 바꾸는가

1:14는 말씀이 인간의 조건 안으로 오셨음을 말합니다. 여기서 육신을 죄악 자체와 같은 말로 읽으면 성육신의 설명이 왜곡됩니다. 예수는 피곤하시고 목마르시며 슬퍼하고 죽음을 겪으십니다. 요한복음이 예수의 신성을 강하게 드러낸다고 해서 그분의 인간적 삶을 겉모습이나 연극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분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생각하게 합니다. 출애굽기의 성막과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읽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한 단어에 가능한 모든 구약 의미를 한꺼번에 집어넣는 방식은 피해야 합니다. 이 연결의 중심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알려지신다는 서문의 결론입니다(1:18).

17장과 20장의 고백을 함께 읽기

17:3은 아버지를 참 하나님으로 알고 보내신 예수를 아는 일을 영생과 연결합니다. 이를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문장으로 읽기 전에 1:1과 17:5, 20:28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복음서는 아버지와 아들을 구별하면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알려지신다고 증언합니다. 그 구별과 관계를 함께 읽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교회의 삼위일체 교리는 이런 성경의 여러 설명을 함께 고백하는 틀로 발전했습니다. 요한복음의 한 문장에 후대 교리의 모든 용어가 이미 같은 형태로 들어 있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성령의 사역을 먼저 읽고, 교리적 설명이 무엇을 보존하려는지 살피면 이해가 더 정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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