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와 지도력은 무엇을 위해 주어지는가
은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자신의 특별함과 영향력의 범위를 묻기 쉽습니다. 그러나 4:7은 선물을 주시는 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합니다. 은혜는 타인보다 우월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배지가 아니라 몸을 위해 맡은 몫입니다. 같은 은혜라는 이유로 모든 역할을 같게 만들 필요도 없고, …
받은 선물과 가진 지위를 구별한다
은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자신의 특별함과 영향력의 범위를 묻기 쉽습니다. 그러나 4:7은 선물을 주시는 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합니다. 은혜는 타인보다 우월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배지가 아니라 몸을 위해 맡은 몫입니다. 같은 은혜라는 이유로 모든 역할을 같게 만들 필요도 없고, 역할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의 존엄에 서열을 매길 필요도 없습니다.
실제 공동체에서는 능력과 직함이 섞여 작동합니다. 잘 가르친다고 모든 결정권을 독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직책이 없다고 아무 선물과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본문은 그리스도로부터 온몸이 연결되어 각 부분이 활동한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의 탁월함과 전체 지체의 참여가 서로를 지우지 않는 관계를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직무의 지속에 관한 차이를 다루는 태도
사도와 예언자를 교회의 기초를 세운 독특한 증인으로 보는 견해는 2:20의 기초와 초기 복음 증언의 성격을 강조합니다. 오늘도 다른 범위의 사도적·예언적 사역이 지속된다고 보는 견해는 4:13의 성숙이라는 목표와 성령의 선물의 현재성을 더 부각합니다. 두 설명 안에서도 세부 입장은 나뉘므로 직함의 사용만으로 모든 신학을 판정할 수 없습니다.
어느 견해든 현대 지도자가 최초 사도의 증언을 바꾸거나 모든 검토에서 면제되는 권한을 자동으로 받지는 않습니다. 본문의 중심은 그리스도와 그분을 아는 진리, 성도들의 성숙입니다. 지도력의 정당성을 특별한 체험이나 성과만으로 주장한다면 그 내용과 실제 관계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사람의 권위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성숙을 돕는 교육의 결과
4:12은 성도들을 갖추어 섬기게 하는 일을 말합니다. 좋은 가르침은 같은 문장을 암송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그렇게 믿고 어떻게 적용하는지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새 주장에 늘 흔들리는 미숙함과, 질문하지 못한 채 지도자만 의지하는 상태는 둘 다 성숙의 충분한 모습이 아닙니다. 사랑 안에서 진실을 분별하는 힘이 자라야 합니다.
성숙은 공동체와 무관하게 혼자 모든 답을 갖는 독립도 아닙니다. 각 지체가 서로의 필요를 공급한다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이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태도도 성숙에 포함됩니다. 독학형 공부 역시 타인의 도움을 필요 없게 만드는 목적보다, 본문을 책임 있게 이해하여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는 목적을 가집니다.
지도자와 배우는 이가 함께 점검할 질문
지도자는 자신의 가르침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더 의존하게 하는지, 자신의 승인 없이는 아무 결정도 못 하게 만드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배우는 이는 무엇이 새롭고 인상적인지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의 목적에 맞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서로의 책임을 묻는 일이 곧 적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과 사랑이 그 논의의 방식도 판단합니다.
눈에 띄지 않는 섬김을 존중하고 역할을 나누며, 필요한 교정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몸의 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활동이 많아졌는지와 함께 누가 지치고 누가 배제되는지도 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의 충만은 소수의 능력 과시보다 모든 지체가 그리스도에게서 생명을 받아 사랑 안에서 제 몫을 하는 모습을 향합니다. 그 성장은 사람의 수만이 아니라 관계의 진실과 사랑에서도 살펴야 합니다.
읽는 곳은 이 기기와 브라우저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