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하나 됨과 이스라엘의 약속
2:1~10을 구원의 공식으로 외우고 2:11의 그러므로를 건너뛰면 편지의 큰 연결을 놓칩니다. 바울은 은혜로 살아난 사람들이 이제 어떤 관계에 놓이는지 설명합니다. 죄에서 살리심과 민족 사이의 화해는 별개의 두 구원 계획이 아닙니다. 같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 앞의 관계…
개인의 구원만으로 끝나지 않는 은혜
2:1~10을 구원의 공식으로 외우고 2:11의 그러므로를 건너뛰면 편지의 큰 연결을 놓칩니다. 바울은 은혜로 살아난 사람들이 이제 어떤 관계에 놓이는지 설명합니다. 죄에서 살리심과 민족 사이의 화해는 별개의 두 구원 계획이 아닙니다. 같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 앞의 관계와 서로의 소속을 새롭게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먼저 구원받은 개인들이 편의를 위해 모인 모임으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두 집단의 적대를 없애고 한 몸으로 만드셨다는 선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백이 특정 교회 조직의 모든 운영을 무오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실제 관계가 그리스도의 화해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계속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물을 지우지 않는 포함
2:12은 이방인의 이전 형편을 이스라엘의 시민권과 약속의 언약들에서 떨어져 있던 상태로 설명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무가치한 과거로 폐기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방인이 참여하게 된 선물의 앞선 역사를 인정합니다. 가까워진 사람은 자신이 본래 더 훌륭해서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2:15의 하나의 새 인류라는 표현도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역사와 가치를 없앤다는 뜻으로 단순화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설명하는 전통에는 차이가 있지만, 본문의 직접적인 목표는 이방인의 동등한 참여와 둘 모두의 화해입니다. 이 단락만으로 현대 국가의 모든 정책에 찬성하거나 특정 민족에 대한 적대를 승인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소속은 차이 없는 획일성과 다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말은 언어와 기억, 사회적 형편이 즉시 없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2:11은 오히려 과거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3:6은 이방인도 함께 상속하고 같은 몸과 약속에 참여한다고 설명합니다. 차이가 더 낮은 구원 지위를 만들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한 몸이라는 고백은 배경이 다른 사람을 손님으로 영구 고정하는 관행을 바꿔야 합니다.
동시에 같은 소속을 모든 의견과 행동을 무조건 승인하는 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4장은 진실과 성숙을, 5장은 악행을 분별하는 책임을 말합니다.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과 해로운 행동을 보호하는 일은 구별할 수 있습니다. 화해의 공동체는 차이를 존중하며 진실을 함께 배우고, 피해와 불의를 말할 길을 마련해야 합니다.
화해의 신학을 실제 구조에서 확인한다
평화라는 말은 누구에게 가장 편안한 상태를 뜻하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갈등이 없다는 외형을 유지하려고 낮은 지위의 사람이 늘 침묵한다면 몸의 하나 됨이 충분히 드러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같은 가족과 시민이라는 고백은 말할 권리와 배울 기회, 돌봄과 책임의 배분에서도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 전권의 겸손과 사랑은 실제 관계의 기준입니다.
이 과제는 공동체가 완벽한 모범을 이미 이루었다고 홍보하는 일이 아닙니다. 4:3은 주어진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 힘쓰라고 말합니다. 실수를 인정하고 더 나은 관계를 배우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이들이 같은 아버지께 나아가며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함께 자라는 모습이, 에베소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다채로운 지혜를 작게나마 드러냅니다. 작은 환대와 정직한 경청도 그 큰 화해의 고백에 참여하는 실제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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