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5:11~21

그리스도의 사랑은 화해의 사명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리스도 앞에 드러날 삶을 말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움직이는 동기와 복음의 내용을 함께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사람을 보는 기준을 바꾸고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부르는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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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앞에 드러날 삶을 말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움직이는 동기와 복음의 내용을 함께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사람을 보는 기준을 바꾸고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부르는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겉모습의 평가보다 하나님 앞의 진실

5:11~13에서 주를 경외하는 바울은 사람들에게 호소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는 고린도인들의 양심에도 알려져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 아시니 사람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의 진실과 공동체 안의 공개성이 함께 갑니다. 자기를 다시 추천하려는 것이 아니라 겉모습을 자랑하는 이들에게 답할 근거를 교회에 주려는 설명입니다.

미쳤든 정신이 온전하든이라는 대조는 바울을 향한 상반된 평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표현을 특정 정신질환의 진단이나 황홀 체험의 상세한 기록으로 읽을 근거는 없습니다. 바울의 초점은 자신에 대한 인상이 어떻든 하나님과 공동체를 향한 사역의 목적에 있습니다. 평범하지 않다는 인상을 주는 것 자체가 영성의 증거도 아니며, 차분해 보인다는 인상만이 진실의 보증도 아닙니다.

한 분의 죽음이 새로운 삶의 방향을 엽니다

5:14의 그리스도의 사랑은 특히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분의 사랑을 중심으로 이해됩니다. 그 사랑이 바울을 붙들고 이끕니다. 한 분이 모든 이를 위해 죽으셨기에 모든 이가 죽었다는 결론은 그리스도의 대표적인 죽음과 그분에게 속한 이들의 참여를 연결합니다. 단지 감동적인 희생을 보고 더 착하게 살기로 결심한다는 설명보다 깊습니다. 이전의 자기중심적 삶을 끝내는 구원의 사건이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다는 고백입니다.

15절은 죽음의 목적을 살아 있는 이들이 더는 자신을 위해서만 살지 않고 그들을 위해 죽고 살아나신 분을 위해 사는 데 둡니다. 모든이라는 표현만 떼어 내면 모든 개인의 최종 구원이 자동으로 확정된다고 읽을 수 있지만, 단락은 화해의 부름에 응답하라고도 요청합니다. 대속의 범위를 설명하는 전통적 차이가 있으나 여기의 논증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삶의 주인과 목적을 바꾼다는 데 집중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새롭게 봅니다

5:16은 이제 사람을 육신에 따라 알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겉모습과 사회적 기준으로 그리스도와 사람을 판단하던 방식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한때 그리스도를 육신에 따라 알았다는 말만으로 바울이 지상 사역 중의 예수를 직접 만났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적인 평가로 예수를 이해했던 이전 관점의 변화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바울이 반대하던 주를 이제 죽고 부활하신 주로 고백한다는 차이가 중요합니다.

17절의 새 창조는 개인의 변화와 더 큰 하나님의 새롭게 하심을 함께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 이전의 질서가 마지막 기준이 되지 않고 새로운 현실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기억이나 피해, 몸의 조건이 즉시 사라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또한 회심한 사람이 더는 성장이 필요 없다는 선언도 아닙니다. 새 소속과 생명의 시작이 사람을 보는 방식과 관계의 행동을 바꾸어 가야 합니다.

화해를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5:18~19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자신과 화해시키셨고 화해의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인간이 충분한 종교적 노력으로 하나님을 억지로 설득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며 사람들의 허물을 그들에게 계산하지 않으셨습니다. 죄를 사소하게 여긴다는 뜻이 아니라 죄로 깨어진 관계를 은혜로 새롭게 하신다는 고백입니다.

화해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점을 놓치면 사랑 없는 하나님과 그분을 달래는 사랑 많은 예수를 대립시키기 쉽습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직접 구원의 일을 행하십니다. 그 화해가 먼저 사도들의 경험으로 설명되지만 세상을 향한 말씀의 위임으로 넓어집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을 남보다 우월한 심판자로 만들기보다 같은 은혜로 돌아오도록 호소하는 자리에 놓입니다.

화해의 대사는 자기 권력을 선포하지 않습니다

5:20에서 바울 일행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절의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권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간청합니다. 그 위임에는 큰 권위가 있지만 전달자가 자기 요구를 모두 하나님의 요구로 바꾸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서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로 전한다고 밝힌 내용이 그 권위의 범위를 정합니다. 대사는 자신을 위해 새 왕국을 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교회인 고린도인들에게 화해를 요청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바울의 복음을 밀어내는 관계가 하나님과의 화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현대 지도자와 의견이 다르면 곧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일반 규칙을 여기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사도적 복음의 내용과 그 내용을 전하는 사람의 실제 신실함이 함께 논의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화해는 진실과 회개의 과제를 건너뛴 감정적 봉합과도 다릅니다.

죄 없으신 분과 하나님의 의라는 역설

5:21은 죄를 알지 못하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죄로 삼으셨다고 말합니다. 예수가 도덕적으로 악해졌거나 죄를 실제로 저지르셨다는 뜻은 앞의 죄 없으심과 충돌합니다. 죄의 책임과 결과를 짊어지셨다는 설명, 구약 제사의 언어에 근거하여 속죄 제물의 의미를 강조하는 설명 등이 있습니다. 이 표현은 죄 없으신 분이 우리를 위한 구원의 자리로 들어가셨다는 강한 역설로 읽어야 합니다.

그 목적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하나님이 주시는 의로운 지위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설명하는 전통, 하나님의 신실함이 사역과 공동체를 통해 드러난다는 점을 강조하는 해석, 실제로 의로운 삶으로 변화됨을 강조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세부 비교는 심화 읽기에서 다룹니다. 공통으로 놓칠 수 없는 것은 의의 근원이 우리의 독립적인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일이라는 사실이며, 그 은혜가 더는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는 삶으로 부른다는 점입니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그리스도의 사랑과 대표적인 죽음은 삶의 목적과 사람을 보는 기준을 새롭게 합니다.
  • 화해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신 은혜이며 사역자는 그 말씀을 맡은 사람입니다.
  •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죄의 문제를 담당하셨으며 우리는 그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 관계에 참여합니다.
함께 생각해요

새 창조가 되면 과거의 기억과 모든 문제가 즉시 사라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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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새로운 소속과 생명이 시작되어 이전 기준으로만 자신과 타인을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편지의 권면들은 여전히 관계와 행동의 성장을 요구합니다.

함께 생각해요

그리스도를 죄로 삼았다는 말은 예수가 실제로 악해졌다는 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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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읽으면 본문의 죄 없으심과 충돌합니다. 죄의 책임과 결과를 짊어지심 또는 속죄 제물의 의미를 강조하는 설명들이 있으며 구원의 역설을 나타냅니다.

함께 읽는 성경

  • 로마서 5:6~11: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죽음, 하나님과의 화해를 함께 살펴봅니다.
  • 고린도후서 6:1~2: 화해의 간청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지금 응답하라는 요청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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