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계시, 가시를 말하는 절제
12장의 계시 이야기를 떼어 읽으면 바울의 특별한 영적 지위를 인증하는 자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그는 약함을 자랑하겠다고 했고 뒤에서는 체험의 세부보다 남아 있는 가시와 충분한 은혜를 말합니다. 계시가 실제였다는 증언과 그 경험이 사도적 권위를 어떻게 뒷받침하…
놀라운 경험도 논증의 목적 아래 있습니다
12장의 계시 이야기를 떼어 읽으면 바울의 특별한 영적 지위를 인증하는 자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그는 약함을 자랑하겠다고 했고 뒤에서는 체험의 세부보다 남아 있는 가시와 충분한 은혜를 말합니다. 계시가 실제였다는 증언과 그 경험이 사도적 권위를 어떻게 뒷받침하는지는 구별해야 합니다. 바울은 체험을 가진 자신을 다른 성도보다 큰 존재로 만드는 방향을 경계합니다.
특별한 경험을 존중하는 전통과 그런 주장에 더 신중한 전통 모두 이 문맥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경험의 강렬함이 곧 설명의 정확함과 동일하지 않다는 점, 경험이 윤리적 책임과 공동체의 분별을 면제하지 않는다는 점이 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이야기하면서도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실제로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평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증언의 일부입니다
몸 안이었는지 밖이었는지 모른다는 반복은 무지를 감추지 않는 증언의 특징입니다. 셋째 하늘과 낙원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특별한 만남을 가리키지만 바울은 모든 우주 공간의 구조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들은 말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오늘의 독자가 성경에 없는 하늘의 층수와 규칙을 새롭게 채워 넣으면 바울이 멈춘 지점을 넘어갑니다.
개인의 영적 경험을 나눌 때에도 사건과 해석을 나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보거나 느꼈다고 기억하는지와 그것이 누구에게 무엇을 명령하는지는 서로 다른 주장입니다. 기억의 한계와 판단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태도는 경험을 거짓이라고 단정하는 태도와 같지 않습니다. 진실한 증언에는 확신뿐 아니라 알지 못하는 부분을 분명히 말하는 절제도 필요합니다.
가시의 원인과 신앙의 성숙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가시는 신체적 병과 장애, 지속적인 적대와 박해 등으로 해석되어 왔지만 확정할 자료는 없습니다. 바울의 모든 질병을 한 가시로 묶거나 다른 편지의 큰 글자와 연결하여 정확한 병명을 찾았다고 말하면 추정이 사실로 바뀝니다. 바울이 그 내용보다 그것이 자신을 높이지 않게 했다는 의미와 주의 응답을 강조한 사실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 의미를 다른 사람에게 일괄 적용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장애와 질병이 있다는 사실로 그 사람이 교만하여 가시를 받았다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사탄의 사자라는 바울의 표현을 모든 의학적 상태의 직접 원인으로 일반화해서도 안 됩니다. 고난받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신앙 안에서 해석할 자유와, 주변 사람이 그에게 원인과 교훈을 강제로 지정하는 행동은 다릅니다.
충분한 은혜는 도움을 거절하는 규칙이 아닙니다
바울은 먼저 가시가 떠나기를 기도했습니다. 고통을 줄여 달라는 소망 자체가 낮은 신앙의 표시라는 뜻은 아닙니다. 응답은 그가 원한 형태의 제거가 아니었지만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 삶을 붙들기에 충분하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주의 임재가 남아 있는 고통과 양립한다는 사실은 고통의 제거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측정하지 않게 합니다.
동시에 이 약속이 병의 치료와 안전의 확보, 공동체의 도움을 그만 구하라는 명령이 되지는 않습니다. 충분함의 근원은 자기를 더 아프게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고통을 많이 소유한 순위가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한 한계를 정직하게 드러내며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설명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여 실제 사랑의 선택을 계속하는 삶에서 이 고백의 의미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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