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7~12

하나님이 먼저 보이신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선언은 추상적인 감정의 정의가 아닙니다. 아들을 보내어 살게 하신 사건이 사랑의 내용과 근거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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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선언은 추상적인 감정의 정의가 아닙니다. 아들을 보내어 살게 하신 사건이 사랑의 내용과 근거를 설명합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7절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서로 사랑하자고 권하며 사랑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났고 그분을 안다고 설명합니다. 앞의 성육신 고백과 영의 분별을 말한 바로 뒤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고백의 정확성과 사랑의 실제를 하나의 생명의 관계로 다시 묶습니다. 독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여 다른 하나를 지울 수 없습니다.

이 문장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무관하고 어떤 좋은 감정만 있으면 같은 구원이라고 단순화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의 내용이 다음 절들에서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역으로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기독교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모든 사람의 친절과 돌봄이 아무 가치도 없다고 주장하는 문장도 아닙니다. 저자의 직접 관심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는 공동체 안에 실제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8절은 사랑하지 않는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가끔 행하실 뿐 아니라 그 성품과 행동이 사랑을 드러낸다는 강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말과 인간이 원하는 모든 사랑의 형태가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랑의 의미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무엇을 하셨는지에 따라 배워야 합니다.

앞의 1:5는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했습니다. 사랑과 빛을 경쟁시켜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거룩함과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죄를 다루시고 실제 생명을 주시는 방식이 그 사랑의 내용입니다. 오늘의 독자는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상대의 실제 선과 회복을 바라는지, 단지 갈등을 피하거나 자신의 욕망을 승인받으려는지 구별해 볼 수 있습니다.

아들을 보내어 우리를 살게 하심

9절은 하나님이 유일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그를 통해 살게 하신 데서 사랑이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독생자로 번역되는 표현은 아들의 독특하고 유일한 관계를 드러냅니다. 원어 단어의 구성만으로 생물학적 출산 과정이나 그리스도의 시작 시점을 계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 문맥의 중심은 아버지가 보내신 아들을 통한 생명이라는 선물입니다.

세상에 보냈다는 말은 하나님이 세상의 고통과 인간의 삶에 무관심한 채 멀리 계신 분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사랑은 실제로 보내심과 생명의 공급으로 나타났습니다. 2장에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사람들을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단어가 어떤 관계와 질서를 가리키는지 문맥마다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이 단락이 다시 보여 줍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다

10절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데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먼저 사랑하여 죄를 위한 속죄의 제물로 아들을 보내셨다고 설명합니다. 사랑의 시작과 구원의 근거가 인간의 열심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된 뒤에야 하나님이 반응하셨다는 구조가 아닙니다. 죄인을 향해 먼저 다가오신 하나님의 사역이 인간의 사랑을 가능하게 합니다.

속죄와 사랑을 서로 반대되는 설명처럼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 문장은 하나님이 죄를 다루시는 사역 자체를 사랑의 나타남으로 말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반대되는 마음을 가졌다는 상상도 이 구조와 맞지 않습니다. 보냄과 아들의 사역이 한 구원의 사랑 안에 있습니다. 그 사실은 죄를 가볍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실패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올 근거를 줍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는 사랑

11절은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만들어 내는 원인은 아니지만 받은 사랑은 실제 응답을 요청합니다. 12절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안에 거하시고 그 사랑이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실제로 보이는 공동체의 사랑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공동체가 하나님을 완전히 대체한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사람들 안에서 목적을 이루고 증언된다는 관계입니다. 1장의 보고 들은 생명은 4장의 눈에 보이는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의 실제가 없는 영적 자랑은 그 관계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독자는 자신의 가까운 관계에서 받은 사랑이 어떤 행동으로 전달되고 있는지 살피며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선언은 아들을 보내신 실제 사역으로 설명됩니다.
  • 먼저 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믿음과 사랑의 근거입니다.
  •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서로 사랑하는 실제 삶에서 드러납니다.
함께 생각해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죄와 진실은 중요하지 않습니까?

설명 보기

본문은 죄를 위한 속죄로 아들을 보내신 일을 사랑의 나타남이라고 말합니다. 사랑과 거룩함, 진실을 서로 취소하는 개념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함께 생각해요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의 순서는 어떻습니까?

설명 보기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여 아들을 보내셨고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서로 사랑합니다. 응답은 필요하지만 선물의 출발을 만들어 내는 공로는 아닙니다.

함께 읽는 성경

  • 요한복음 3:16~17: 아들을 보내신 사랑과 세상의 구원을 향한 목적을 함께 읽습니다.
  • 요한일서 1:5~7;3:16~18: 빛과 속죄, 실제 자기 내어줌의 사랑을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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