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2:1~6

죄를 경계하며 의로우신 대언자를 의지하기

정직한 죄 고백은 죄를 가볍게 여기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중보와 속죄, 하나님을 안다는 말과 순종의 관계를 함께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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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죄 고백은 죄를 가볍게 여기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중보와 속죄, 하나님을 안다는 말과 순종의 관계를 함께 읽습니다.

죄를 짓지 않도록 쓰는 목적

1절은 나의 자녀들이라는 친밀한 호칭으로 시작합니다. 저자의 목적은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죄의 현실을 인정하고 용서를 약속했다고 죄는 어쩔 수 없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죄를 진실하게 인정하는 일과 그것을 버리려는 삶은 함께 갑니다. 위로가 책임을 없애지 않으며 책임이 위로를 취소하지도 않습니다.

동시에 누구든 죄를 지으면 아버지 앞에 대언자가 있다고 합니다. 실패한 사람이 돌아갈 근거는 자기의 죄를 작게 만들거나 의로움을 꾸며 내는 능력이 아닙니다.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위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려다 죄인을 절망에 가두지 않고, 용서를 말하려다 죄의 심각성을 지우지 않습니다. 이 두 강조가 요한일서의 독해에 계속 필요합니다.

아버지 앞의 대언자

대언자라는 원어는 변호하고 돕고 중보하는 역할을 생각하게 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을 설명할 때도 비슷한 호칭이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문맥마다 주체를 확인해야 하며 같은 단어가 나왔다고 언제나 동일한 인격을 가리킨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중심은 신자가 혼자 아버지 앞에서 자기 의를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의로우신 분으로 소개됩니다. 죄가 있는 인간과 같은 처지에서 단순히 감정적으로 편드는 분이 아니라 죄를 다루실 참된 근거를 가진 분입니다. 그렇다고 아버지는 용서하기 싫어하시고 아들만 설득하려 한다는 대립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4:10은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여 아들을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중보와 속죄는 먼저 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놓입니다.

우리뿐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속죄

2절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시며 우리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죄를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사역이 중심입니다. 화목제물이나 속죄제물로 번역되는 표현의 강조에 차이가 있지만 죄의 문제를 인간의 선행만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특정 소수 집단의 사적인 소유물이 아닙니다.

온 세상이라는 범위를 실제로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전통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속죄의 제공을 강조하는 견해와 모든 민족에서 부르시는 이들을 위한 효력과 충분성을 구별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절이 모든 사람이 믿음과 무관하게 자동으로 구원된다고 직접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5:12에서 아들 안의 생명을 강조합니다. 범위와 적용의 논의를 구별하면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넓이를 충분히 들어야 합니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의 실제 기준

3~4절은 그를 안다는 사실을 계명을 지키는 삶으로 확인한다고 말합니다. 인격적인 앎이 말의 고백과 지적 지식에만 갇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계명을 무시하면서 특별한 지식이 있다고 주장하는 태도는 진실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 번 실수하면 즉시 모든 관계가 없었다고 판정하는 공식으로 좁힐 수도 없습니다. 방금 1절이 죄를 지은 신자에게 대언자를 말했기 때문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삶과 실패를 감추지 않고 돌아오는 삶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순종이 필요 없다는 방임과 죄를 인정하면 참된 신자일 수 없다는 완벽주의는 모두 이 문맥의 일부만 선택합니다. 저자가 묻는 것은 삶의 지배적인 방향이 그리스도를 아는 관계와 일치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참된 앎은 그분의 말을 존중하며 잘못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응답을 낳습니다.

그분이 걸으신 것처럼 걷기

5~6절은 말씀을 지키는 이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되고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은 그분이 걸으신 대로 걸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읽는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으로 읽는지 문맥상 강조에 차이가 있지만 사랑과 순종이 연결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완성은 추상적인 사랑이 삶에서 목적을 이루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처럼 걷는다는 말은 그의 모든 구원 사역을 우리가 반복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의 순종과 사랑, 진실함에 합당한 방향으로 사는 것입니다. 다음의 새 계명은 그 핵심을 형제 사랑으로 구체화합니다. 독자는 그리스도를 안다고 할 때 어떤 정보를 말할 수 있는지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태도로 듣는지 함께 돌아볼 수 있습니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죄를 짓지 않는 목적과 실패한 사람을 위한 대언자의 위로가 함께 있습니다.
  • 그리스도의 속죄는 먼저 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죄를 다룹니다.
  • 그리스도를 아는 관계는 말씀을 존중하고 그분처럼 걷는 삶으로 드러납니다.
함께 생각해요

죄의 용서를 강조하면 죄를 가볍게 여겨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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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죄를 짓지 않도록 쓴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동시에 실패한 사람에게 의로우신 대언자의 위로를 줍니다. 둘 중 하나를 지워서는 안 됩니다.

함께 생각해요

그리스도처럼 걷는다는 말은 그의 구속 사역을 반복한다는 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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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고유한 속죄 사역을 반복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분의 순종과 사랑에 합당한 삶의 방향을 따라가라는 요청입니다.

함께 읽는 성경

  • 요한복음 14:15~21: 사랑과 계명, 보혜사의 약속을 각 문맥의 주체를 구별하여 읽습니다.
  • 요한일서 4:9~11: 속죄와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먼저 하신 사랑을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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