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책망과 민족적 인용, 분열을 다루는 절차
1:12~13의 인용은 그레데 사람들에 대해 극단적으로 일반화한 고대의 거친 말을 가져와 그 증언이 참되다고 인정합니다. 본문을 읽기 편하게 만들려고 그런 강도가 없었다고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이 수사의 쓰임과 오늘 독자가 만들려는 주장을 구별해야 합니다. 편지는 그레…
강한 수사에는 역사적 자리가 있습니다
1:12~13의 인용은 그레데 사람들에 대해 극단적으로 일반화한 고대의 거친 말을 가져와 그 증언이 참되다고 인정합니다. 본문을 읽기 편하게 만들려고 그런 강도가 없었다고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이 수사의 쓰임과 오늘 독자가 만들려는 주장을 구별해야 합니다. 편지는 그레데의 구체적 거짓 교사와 탐욕, 건강한 믿음을 회복할 필요를 다루는 논쟁의 문맥에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에피메니데스에게 돌려지는 말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의 모든 종교와 철학이 계시된 진리로 승인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외부의 언어가 특정 논증에 사용되는 경우입니다. 이것을 어떤 지역 출신의 현대인을 불변적으로 열등하다고 취급하는 권리로 옮기면 인용의 문맥과 적용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문장의 불편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불편함을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행동으로 확대하지 않는 읽기가 필요합니다.
일부 가르침의 비판과 집단 혐오는 다릅니다
할례에 속한 이들과 유대적 이야기에 관한 비판도 모든 유대인을 하나의 악한 성격으로 묶는 선언이 아닙니다. 편지의 신앙은 이스라엘 성경과 하나님의 언약 언어에 깊이 기대고 있습니다. 유대인 출신의 사도와 동역자도 신약의 증언 안에 있습니다. 일부 가르침의 구체적인 해악을 비판하는 일과 민족 집단의 존엄을 부정하는 일은 구별해야 합니다.
우리도 어리석고 미혹되었다는 3:3의 회상은 성도의 우월감을 낮춥니다. 교회는 타고난 도덕적 우월성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 긍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3:2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를 보이라고 명령합니다. 따라서 책망의 강한 문장만 떼어 공동체의 기본 어조를 모욕과 경멸로 만들면 같은 편지의 넓은 요구를 잃습니다. 진리와 온유가 어떻게 함께 필요한지 살펴야 합니다.
입을 막음과 날카로운 교정의 목적
1:11은 가르침으로 가정을 뒤흔들고 부정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실제 해악을 중단시킬 책임을 밝힙니다. 모든 의견이 똑같이 유익하다는 이유로 회중을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을 물리적 폭력과 모든 질문의 억압에까지 확대하면 지도자의 비폭력과 절제를 요구한 앞부분을 지우게 됩니다.
1:13은 믿음에서 건강해지는 것을 교정의 목적으로 둡니다. 교정은 문제의 주장과 행동을 분명히 설명하고 중단과 돌이킴을 요청해야 합니다. 단지 사람을 공개적으로 굴욕 주어 두려움을 심는 데서 만족한다면 이 목적을 잃습니다. 지도자가 자기에게 불리한 사실을 제기한 사람까지 반대자로 묶는지, 보호와 회복을 위한 실제 길을 열고 있는지 검토할 수 있습니다.
권면과 경계에는 공정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3:10은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먼저 반복하여 권면한 뒤 관계의 경계를 세우라고 합니다. 회복의 기회를 주면서도 계속되는 해악을 무한히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 절을 적용하려면 무엇이 사실이고 어떤 가르침과 행동이 공동체를 해치는지 분명해야 합니다. 의견의 차이와 집요한 분파 행동, 보호를 위한 고발과 권력을 위한 험담을 구별할 책임이 있습니다.
경계가 필요할 때에도 결정의 이유와 절차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성경적 징계의 방식이 이 두 절에 상세히 쓰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교정 본문과 교회의 책임 있는 절차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디도서의 마지막은 헛된 싸움에만 머물지 말고 필요한 것을 돕는 선한 일을 배우라고 합니다. 공동체를 지키는 권위는 사람을 제거한 수보다 진리와 돌봄을 얼마나 신실하게 감당했는지로 검토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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