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돌봄 속에서 끝까지 지키시는 주님
믿음의 길을 마쳤다는 고백 뒤에는 사람과 옷과 책에 관한 구체적인 부탁이 나온다. 장래의 나라를 확신하는 사람도 현재의 추위와 외로움과 돌봄을 필요로 한다.
믿음의 길을 마쳤다는 고백 뒤에는 사람과 옷과 책에 관한 구체적인 부탁이 나온다. 장래의 나라를 확신하는 사람도 현재의 추위와 외로움과 돌봄을 필요로 한다.
빨리 와 달라는 부탁과 다른 종류의 떠남
9~10절은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부탁하며 데마가 현재의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다고 말한다. 이어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고 전한다. 이 모든 이동을 같은 종류의 배신으로 묶으면 안 된다. 데마에게는 부정적인 동기가 명시되지만 다른 두 사람의 이동 이유는 이 절에서 평가되지 않는다. 본문이 구별한 수준을 독자도 지켜야 한다.
데마의 선택은 앞의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이들과 대비된다. 무엇을 사랑하는지가 관계와 사명의 선택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이 짧은 평가만으로 그의 남은 전 생애와 최종 상태를 모두 알 수는 없다. 바울이 지금 경험하는 외면과 그 이유를 전한다는 범위에서 읽어야 한다. 사람의 이름을 교훈의 예로 사용할 때에도 기록된 사실보다 더 큰 판결을 덧붙이지 않아야 한다.
함께 있는 누가와 다시 필요한 마가
11~12절은 누가가 함께 있고 마가가 사역에 유익하니 데리고 오라고 한다.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냈다고 밝힌다. 바울이 외롭다고 말해도 모든 사람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현재 곁에 있는 사람, 보내진 사람, 앞으로 오기를 바라는 사람이 구별된다. 사역의 관계는 한 장소의 고정된 명단보다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협력의 망으로 드러난다.
사도행전 15장의 마가를 둘러싼 갈등과 함께 읽으면, 이전의 어려움이 한 사람의 모든 미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다만 두 사람이 언제 어디서 어떤 대화로 화해했는지는 이 편지가 기록하지 않는다. 확실한 내용은 지금 마가가 유익한 동역자로 평가된다는 사실이다. 독자는 회복을 소중히 여기되 알려지지 않은 감동적인 과정을 사실처럼 만들어 내지 않아야 한다.
옷과 책을 필요로 하는 사도
13절은 드로아의 가보에게 두었던 겉옷과 책들, 특히 양피지에 쓴 것들을 가져오라고 한다. 어떤 문서와 성경 책이었는지 구체적인 목록은 없다. 이 부탁은 영적인 확신이 몸의 필요와 읽고 배우는 활동을 없애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죽음을 예상하는 사람도 현재 필요한 것을 정직하게 요청하고 자신의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다.
겉옷을 특별한 사제복이나 신비한 상징으로 만들 근거는 없다. 책의 정확한 내용을 추정하는 것도 가능한 가설로만 말해야 한다. 21절의 겨울 전에 오라는 부탁과 함께 읽으면 시간과 몸의 제약이 실제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사도를 돕는 일은 거창한 이상을 말하는 것뿐 아니라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늦지 않게 찾아오는 수고로 이루어진다.
해를 준 사람과 외면한 사람을 구별하다
14~15절은 구리 세공인 알렉산더가 큰 해를 끼치고 말을 대적했으니 조심하라고 한다. 같은 이름이 다른 편지에 나온다고 모두 같은 인물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바울은 해악을 분명히 알리고 디모데에게 경계를 요청한다. 주님이 행위대로 갚으실 것이라는 말은 자신이 복수의 최종 집행자가 되려 하지 않고 판단을 맡기는 태도로 읽을 수 있다.
16절의 첫 변론 때 자신을 도운 사람이 없었다는 진술은 다른 종류의 상처다. 그는 그들에게 책임이 돌아가지 않기를 구한다. 적극적으로 해를 끼친 사람을 경계하는 일과 두려워 떠난 이들을 위해 용서를 구하는 일이 함께 있다. 사랑은 모든 관계를 똑같이 처리하는 감정이 아니다. 회복을 바라면서도 실제 위험을 알리고 필요한 경계를 세울 수 있다.
사자의 입에서 건지심과 하늘나라의 보존
17절은 사람들이 곁에 서지 않았을 때 주님이 곁에 서서 힘을 주셨다고 고백한다. 목적은 증언이 충분히 전해져 이방인들이 듣도록 하는 데 있다. 사자의 입에서 건졌다는 표현은 극심한 위험에서의 구원을 나타내는 성경적 이미지로 읽을 수 있다. 이 문장만으로 실제 맹수의 공격인지 특정 황제의 별명인지 단정할 필요는 없다.
18절의 모든 악한 일에서 건지고 하늘나라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은 죽음에서 언제나 풀려난다는 약속이 아니다. 앞에서 바울은 떠날 때가 가까웠다고 했다. 최종 보존은 지금의 육체적 안전보다 더 넓은 구원의 지평을 갖는다. 주님이 끝까지 자기 사람을 잃지 않으신다는 신뢰는 죽음을 예상하는 상황에서도 찬양하게 한다. 이 소망은 현재 도움을 요청하는 태도와도 모순되지 않는다.
마지막 인사에 남은 공동체의 얼굴
19~21절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오네시보로의 집에 인사를 전하고,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남았으며 드로비모는 병들어 밀레도에 두었다고 한다. 병든 동역자가 있다는 사실은 사도의 믿음이나 은사가 모든 질병을 즉시 없앴다는 생각을 교정한다. 이어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자매의 인사가 나온다. 알려진 정보가 적은 이름들도 공동체의 실제 구성원으로 보존된다.
22절은 디모데의 영과 함께하실 주님을 구하고, 복수형의 너희에게 은혜를 빈다. 한 사람을 향한 사적인 편지가 공동체 전체를 향해 열린다. 편지의 마지막은 사슬이나 배신만으로 닫히지 않는다. 주님의 함께하심과 서로 전하는 인사와 은혜가 남는다. 독자는 누구를 떠올리고 누구에게 실제 도움을 요청하며 누구를 위해 기도할지 생각하면서 이 책을 마칠 수 있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동역자들의 이동에는 서로 다른 이유가 있으므로 모든 떠남을 배신으로 묶을 수 없다.
- 겉옷과 책과 방문을 부탁하는 모습은 영적 확신과 인간의 실제 필요가 공존함을 보여 준다.
- 주님의 최종 보존은 죽음을 전혀 겪지 않는다는 약속보다 하늘나라에 이르게 하시는 신실함이다.
데마와 그레스게와 디도의 이동을 동일하게 평가하면 왜 부정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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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마에게만 현재의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다는 부정적인 이유가 명시되기 때문이다. 다른 이동의 동기를 기록 이상으로 판정해서는 안 된다.
18절의 건지심과 6절의 죽음 예상은 어떻게 함께 이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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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구원이 항상 육체적 위험의 즉각 제거를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의 가능성 속에서도 하늘나라에 이르게 하실 최종 보존을 신뢰하는 고백으로 읽을 수 있다.
함께 읽는 성경
- 사도행전 15:36~41: 마가와 관련된 이전의 갈등을 현재의 동역 평가와 함께 읽는다.
- 시편 22:19~24: 사자의 입이라는 위험의 이미지와 구원 후의 증언을 비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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