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견디는 믿음과 하나님의 건지심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복음 때문에 사슬에 묶인 사람이다. 사회적 수치와 법정의 외면이 생겼지만 그는 자기 사명을 철회하지 않는다. 고난의 존재만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판단의 근거는 자신이 언제나 옳았다는 자부심보다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고난이 사명의 실패를 뜻하지 않을 때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복음 때문에 사슬에 묶인 사람이다. 사회적 수치와 법정의 외면이 생겼지만 그는 자기 사명을 철회하지 않는다. 고난의 존재만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판단의 근거는 자신이 언제나 옳았다는 자부심보다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부활하신 그리스도다. 사역자는 눈앞의 평판이 최종 판결이 아님을 기억한다.
그러나 고난을 겪는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주장과 행동이 자동으로 옳아지는 것도 아니다. 거짓이나 무책임 때문에 받는 비판은 분별해야 한다. 3장이 제시한 바울의 본에는 가르침뿐 아니라 사랑과 오래 참음과 인내가 포함된다. 복음을 위한 고난을 말하려면 내용과 삶을 함께 살펴야 한다. 어려움을 신앙의 증거로 내세워 모든 검토를 막는 태도는 편지가 요구하는 정직함과 다르다.
그리스도의 승리와 아직 남아 있는 죽음
1:10은 그리스도가 죽음을 폐하셨다고 하고 4:6은 바울의 죽음이 가까웠다고 한다. 둘을 함께 읽으면 복음의 승리가 현재 모든 신자의 육체적 죽음을 즉시 없앴다는 뜻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의 최종 권세를 꺾었고, 신자는 그 생명과 영광의 완성을 기다린다. 지금 받은 생명과 장래의 부활을 나눠 생각하되 서로 분리하지 않아야 한다.
2:18의 오류는 부활을 이미 끝난 일로 만들어 신자의 소망을 무너뜨린다. 이미 은혜를 경험했다는 사실로 앞으로의 구원을 모두 소진시킬 수 없다. 반대로 장래만 기다리며 현재의 믿음과 사랑을 무의미하게 여길 수도 없다. 편지는 부활을 기억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지금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고난을 견디라고 한다. 미래의 소망은 현재의 성실함을 지탱한다.
건지심이 언제나 같은 모습은 아니다
3:11은 주님이 과거 고난에서 건지셨다고 고백하고, 4:17은 법정의 위험에서 도우셨다고 말한다. 이어 4:18은 하늘나라에 이르게 하실 최종 보존을 말한다. 건지심의 형태를 언제나 즉각적인 석방과 건강 회복으로만 고정하면 죽음을 예상하는 문맥을 설명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실제 위험에서 구하실 수 있고, 죽음이 다가오는 때에도 자기 사람을 버리지 않으신다.
이 차이를 인정한다고 현재의 필요를 영적인 말로 덮어서는 안 된다. 바울은 겉옷과 책을 요청하고 디모데가 속히 오기를 바란다.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는 사람이 사람의 도움도 필요로 한다. 공동체는 장래 소망을 말하면서 현재 추위와 외로움과 질병을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 위로의 말과 실제 방문은 서로를 대신하기보다 함께 필요한 섬김이다.
인내와 도움 요청을 함께 배우다
고난을 견디라는 명령은 고통의 감정을 부정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편지는 눈물과 그리움과 외면의 상처를 정직하게 보존한다. 바울은 자신을 떠난 이를 위해 기도하면서 해를 주는 사람은 경계하라고 한다. 그러므로 모든 위험에 계속 노출되는 일이 신실함의 유일한 형태라는 결론도 어렵다. 인내는 지혜로운 경계와 진실한 도움 요청을 포함할 수 있다.
독자는 자신의 상황을 바울의 감금과 성급히 같다고 부르기보다, 어떤 소망과 책임을 배울 수 있는지 묻는다. 어려울 때 진리를 버리지 않고, 도움을 청하며, 고난받는 다른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실천이 가능하다. 신앙의 강함은 아픔을 전혀 말하지 않는 모습보다 주님께 의지하면서 사랑과 정직함을 계속 지키는 데서 드러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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