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평강과 말씀으로 새 삶을 입습니다
옛 삶을 벗는 일은 빈자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선택받고 사랑받은 공동체가 무엇을 입고 어떤 소리로 살아갈지 이어서 배웁니다.
옛 삶을 벗는 일은 빈자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선택받고 사랑받은 공동체가 무엇을 입고 어떤 소리로 살아갈지 이어서 배웁니다.
명령보다 먼저 주어진 사랑의 이름
12절은 성도들을 하나님께 선택받고 거룩하며 사랑받는 사람들로 부릅니다. 이 세 이름 뒤에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을 입으라는 명령이 따릅니다. 자신이 사랑받을 만함을 입증해야만 사랑을 얻는다는 순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관계에 어울리는 생활을 배우는 것입니다.
선택은 타인보다 고귀하다는 자랑의 근거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인의 연약함을 돌보고 자기 권리를 절대화하지 않는 덕목의 근거입니다. 앞 단락에서 그리스도 안의 구분을 넘어선 공동체를 말했다면, 이제 그 하나됨을 실제로 유지하는 태도를 설명합니다. 자신의 특별함을 강조하면서 사람을 멸시하는 선택 교리는 이 문맥을 거꾸로 사용합니다.
서로 용납하고 용서합니다
13절은 서로에게 불만과 책임을 물을 일이 생길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신앙 공동체에는 갈등이 전혀 없어야 한다는 이상을 전제하지 않습니다. 불완전한 사람이 함께 살기 때문에 서로를 참아 주고 용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근거는 주님이 먼저 성도들을 용서하신 일입니다. 용서는 자신의 넉넉한 성품만 자랑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용납은 악한 행동을 계속하도록 방치하는 일과 다릅니다. 잘못을 분명히 말하고 안전을 확보하며 가능한 회복을 구하는 절차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용서를 피해자에게 강제하여 책임을 묻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은 서로라는 말의 무게를 잃습니다. 그리스도의 용서는 악을 진실하게 직면하는 십자가에 근거합니다. 관계의 회복을 구하되 죄의 중단을 지우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묶는 사랑
14절은 그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라고 하며 사랑을 온전하게 묶는 띠로 설명합니다. 앞의 덕목들을 따로 떨어진 성격 목록으로만 두지 않고 하나의 관계적 방향으로 묶습니다. 친절이 상대의 인정을 얻는 도구가 되고 인내가 속으로 미움을 쌓는 방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목적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사랑은 모든 요청을 그대로 수락하는 행동과 같지 않습니다. 상대에게 실제로 선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자기 이익만을 중심에 두지 않는 태도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진리를 말하고 필요한 한계를 세우는 행동도 사랑의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바른 말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함부로 모욕하면 이 덕목들의 연결을 끊는 결과가 됩니다.
한 몸을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평강
15절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다스리게 하라고 합니다. 개인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편안한 느낌이 들면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라는 신호로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곧 한 몸으로 부름받았다는 설명이 이어지므로 공동체의 평화와 판단의 방향이 중심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이루신 화평이 서로를 대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 다시 붙습니다. 감사는 경쟁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지위를 지키려는 마음과 다른 시선을 줍니다. 그러나 불의가 있는 상황에서도 감사만 말하고 문제를 꺼내지 말라는 침묵의 규칙은 아닙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기에 서로를 소모품처럼 사용하지 않고 진실한 평화를 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풍성히 거하며 서로 가르칩니다
16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하라고 요청합니다. 공동체의 중심을 한 사람의 감정이나 체험에 두지 않고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과 그분의 가르침이 충분히 자리 잡게 합니다.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는 주체는 회중 전체입니다. 지도자의 책임을 지우지는 않지만 배움과 돌봄의 참여를 소수에게 독점시키지 않습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는 감사로 하나님께 노래하는 예배와 연결됩니다. 이 세 말이 서로 완전히 구별되는 현대 음악 장르의 분류표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노래가 말씀을 기억하고 서로를 세우는 통로가 된다는 방향이 중요합니다. 가사의 정서적 힘만 살필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님과 어떤 삶을 가르치는지도 함께 살필 수 있습니다.
말과 일 모두 주님의 이름으로
17절은 무엇을 하든 말이나 행동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며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맺습니다. 주님의 이름은 행동 끝에 덧붙이는 승인 문구보다 그분을 대표하며 그분께 속한 사람으로 행하는 기준입니다. 공적인 예배의 시간과 그 밖의 생활을 서로 다른 주인이 다스리는 영역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이 요청은 다음의 부부와 부모와 자녀, 종과 주인의 관계로 이어집니다. 찬송과 말씀의 공동체가 실제 권력과 책임을 다루는 방식을 묻게 됩니다. 독자는 하루의 말과 결정을 떠올리며 그 행동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감사와 사랑이 예배에서만 들리고 관계에서는 사라지지 않도록 배우는 것이 새 사람의 삶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불만이 생겼을 때에는 그를 배제할 이유만 찾기보다 사실을 듣고 선한 해결을 구할 수 있습니다. 말씀과 찬송이 그런 대화의 방향도 바꾸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사랑받는 정체성이 긍휼과 겸손, 용서와 사랑의 삶에 앞섭니다.
- 그리스도의 평강과 말씀이 한 몸인 공동체의 관계와 예배를 다스립니다.
-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삶은 찬송과 기도에서 일상의 모든 말과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평강을 개인의 편안한 느낌과 동일시하면 무엇을 놓칩니까?
설명 보기
한 몸으로 부름받은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화평 아래 서로를 대해야 한다는 문맥을 놓칩니다.
서로 가르치라는 명령은 공동체에 어떤 기회를 줍니까?
설명 보기
말씀을 배우고 노래하며 권면하는 섬김에 모든 성도가 책임 있게 참여하도록 부릅니다.
함께 읽는 성경
- 에베소서 4:25~5:2: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의 근거를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찾습니다.
- 에베소서 5:18~21: 성령의 충만과 노래와 감사, 서로에 대한 태도를 비교합니다.
읽는 곳은 이 기기와 브라우저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