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15~20

만물의 주이신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화평을 이루십니다

기도에서 언급한 아들은 작은 종교 영역의 주인이 아니십니다. 편지의 중심적인 찬양은 창조와 새 창조, 교회와 십자가를 한 분 그리스도 안에서 연결합니다.

약 4분깊이 읽는 성경
편안하게 읽기

기도에서 언급한 아들은 작은 종교 영역의 주인이 아니십니다. 편지의 중심적인 찬양은 창조와 새 창조, 교회와 십자가를 한 분 그리스도 안에서 연결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15절의 그리스도는 앞에서 사랑하시는 아들로 소개된 분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선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겉모습을 닮았다는 외형 묘사가 아닙니다. 그분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창세기의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지만, 여기서는 만물의 창조와 유지에 관계하시는 아들의 독특한 지위가 이어져 설명됩니다.

15~20절에는 반복과 균형 잡힌 문장 때문에 찬송이나 신앙 고백의 성격이 보입니다. 많은 연구자는 편지 이전의 찬양 자료를 생각하지만, 원래의 가사와 편집 과정을 정확히 복원한 것은 아닙니다. 독자는 그 출처를 확정해야만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편지 안에서 이 고백이 어떤 논리를 이루는지 먼저 읽으면 충분한 출발점이 생깁니다.

모든 창조물의 맏이라는 말

처음 나신 분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가 최초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뜻으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16절은 만물이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해,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다고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분은 그 만물보다 앞서 계십니다. 이 논리 속에서 맏이라는 호칭은 창조 전체에 대한 우선성과 상속자의 지위를 나타냅니다.

시편 89:27은 다윗 계열의 왕을 맏아들로 세워 땅의 왕들보다 높이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맏이라는 말이 출생 순서 외에 지위와 통치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연결만으로 골로새서의 모든 뜻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단어 하나를 떼어 피조물의 첫 순서로 고정하는 해석보다 다음 문장과 함께 읽는 편이 문맥에 맞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주

16절의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창조의 범위를 넓게 포괄합니다. 왕권과 주권, 통치와 권세의 목록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거나 높은 지위를 부여하는 세력도 그리스도와 대등한 근원이 아님을 밝힙니다. 모든 존재의 출처와 목적이 그분과 관계합니다. 영적 세계에 대한 관심이 그리스도를 여러 능력 중 하나로 낮추어서는 안 됩니다.

이 목록을 천상 존재의 정확한 서열표로 만들어 각 단계의 이름과 기능을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편지는 그 세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사실과 악한 행위를 승인하신다는 주장은 다릅니다. 창조의 주권을 고백하는 목적은 악을 정당화하는 데 있지 않고 다른 권세가 성도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지배한다는 두려움을 깨는 데 있습니다.

만물을 붙드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17절은 그리스도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며 만물이 그분 안에서 유지된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와 무관하게 존재하다가 신앙을 가진 사람이 그분을 덧붙이는 공간이 아닙니다. 이 선언은 자연 현상의 작동 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라 존재 전체의 의존과 방향에 관한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피조 세계를 무가치하게 버려도 된다는 태도와 맞지 않습니다.

18절에서는 같은 분이 몸인 교회의 머리로 제시됩니다.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과 공동체를 살리시는 분이 나뉘지 않습니다. 교회의 생명과 질서는 인간 지도자가 최종적으로 소유하지 않습니다. 뒤의 2:19에서 머리를 붙들지 않는 일이 성장의 문제로 다시 등장합니다. 그리스도를 높이는 고백은 결국 교회가 누구에게 의존하고 누구의 뜻을 따를지 묻게 합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신 분

18절의 시작이며 죽은 자들 가운데 맏이시라는 표현은 부활을 새 창조의 문턱으로 보여 줍니다. 단지 이전에 소생한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시간표의 뜻보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이 새 생명의 시작과 주가 되신다는 뜻이 중요합니다. 모든 일에서 으뜸이 되신다는 목적이 창조와 구원의 두 장면을 연결합니다.

19절의 충만함은 이어지는 2:9에서 신성의 모든 충만함으로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리스도께 구원의 일부만 있고 나머지는 다른 영적 중개자에게서 받아야 한다는 구도가 차단됩니다. 교회의 성숙도 그분에게 없는 것을 더하여 완전하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충만하신 분께 속하여 그 생명으로 자라는 일입니다.

십자가의 피와 만물의 화목

20절은 만물의 화목을 십자가의 피로 이루신 화평과 연결합니다. 우주의 큰 언어가 구체적인 죽음으로 모입니다. 화해는 악과 적대를 없는 것처럼 무시한 평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자기 내어 줌으로 이루어진 질서의 회복입니다. 다음 단락은 그 화목을 실제 성도들의 과거와 현재에 적용합니다.

만물을 화목하게 하신다는 말을 모든 개인과 악한 세력의 최종 구원이 자동으로 보장된다는 결론으로 곧바로 옮기지는 않아야 합니다. 해석자들은 구원의 우주적 회복을 강조하거나 반대 세력까지 주권 아래 질서 잡히는 측면을 함께 봅니다. 편지는 곧 믿음에 머무르라는 권면과 뒤의 심판 경고를 전합니다. 범위를 축소하지 않되 독자가 화목과 심판의 관계를 다른 본문과 함께 신중히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의 근원과 목적과 유지에 관계하십니다.
  • 창조의 맏이이며 부활의 맏이신 분이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 만물의 화목은 십자가로 이루신 화평에 근거하며 회개와 믿음의 요청을 지우지 않습니다.
함께 생각해요

처음 나셨다는 말을 최초의 피조물로만 읽기 어려운 근거는 무엇입니까?

설명 보기

바로 다음 문장이 만물이 그분을 통해 창조되었고 그분이 만물보다 먼저 계신다고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생각해요

우주적 그리스도 고백이 교회의 현실과 연결되는 지점은 어디입니까?

설명 보기

같은 분이 교회의 머리라고 고백하며 공동체의 생명과 성장이 그분에게서 온다고 설명합니다.

함께 읽는 성경

  • 시편 89:26~29: 맏아들의 호칭이 왕의 지위와 높임을 나타내는 용례를 비교합니다.
  • 요한복음 1:1~18: 만물의 창조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아들을 함께 읽습니다.

읽는 곳은 이 기기와 브라우저에 저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