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21~29

화목하게 된 사람을 온전하게 세우는 수고

만물을 화목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일은 골로새 성도들의 삶에도 이르렀습니다. 편지는 구원을 받은 공동체와 그 공동체를 섬기는 사역자의 자리를 함께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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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을 화목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일은 골로새 성도들의 삶에도 이르렀습니다. 편지는 구원을 받은 공동체와 그 공동체를 섬기는 사역자의 자리를 함께 설명합니다.

멀리 떠나 적대하던 과거

21절은 앞의 우주적 고백을 너희라는 구체적 청중에게 적용합니다. 이전에는 하나님과 소원해졌고 마음으로 적대하며 악한 일을 행했습니다. 적대는 단지 정보를 몰랐다는 상태보다 생각과 행위의 방향을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 화목을 이루셨다는 은혜를 깊이 알려면 무엇에서 돌이켜졌는지도 정직하게 읽어야 합니다.

이 회상은 회심 이전의 모든 인간관계와 문화가 아무 선도 없었다는 세부 평가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열등하게 만들기 위한 민족적 낙인도 아닙니다. 저자는 독자들 자신이 받은 화목을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 의로움을 높이기보다 은혜를 기억하게 하며, 과거에 묶인 사람이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만 살 수 있다는 숙명론을 깨뜨립니다.

육체의 몸과 죽음이 이룬 화목

22절은 그리스도의 육체의 몸과 죽음을 통해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화목을 영적인 깨달음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그분의 실제 죽음에 붙잡아 둡니다. 골로새서가 몸을 천한 장애물로 버리라고 말한다면 이 표현은 어색해집니다. 2장의 육체로 거하시는 충만함과 함께 보면 구원은 육체와 역사에 무관한 비밀 영역에 있지 않습니다.

화목의 목적은 성도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존재로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의 지위와 그에 어울리는 삶이 함께 내다보입니다. 이것을 이미 모든 습관이 완벽하게 바뀌었다는 자기평가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열어 준 새로운 관계가 장차의 완성과 현재의 성숙을 향하여 성도를 부릅니다.

믿음에 머무르라는 조건의 무게

23절은 믿음에 터를 두고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말라고 합니다. 이미 화목하게 하셨다는 선언과 계속 머무르라는 요청이 나란히 있습니다. 은혜를 말했으므로 지속적인 믿음은 중요하지 않다는 해석도,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매번 처음부터 구원을 얻어야 한다는 불안의 해석도 이 관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성도의 견인을 강조하는 전통은 이러한 권면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끝까지 붙드시는 수단으로 읽습니다. 믿음을 떠날 실제 위험을 더 강조하는 전통은 경고의 조건을 진지한 선택의 요청으로 읽습니다. 양쪽 모두 성도를 새로운 중개자나 다른 소망으로 옮기라는 뜻으로 보지 않습니다. 본문이 독자에게 직접 요구하는 것은 지금 들은 복음의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는 말

24절은 바울이 교회를 위해 받는 고난을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고난에서 부족한 것을 자신의 몸으로 채운다고 말합니다. 바로 앞에서 십자가의 화목을 선포했으므로 그리스도의 속죄가 불완전하여 바울이 추가 대가를 내야 한다는 결론은 문맥과 맞지 않습니다. 부족하다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역사 속에서 교회에 전해지는 고난의 참여와 연결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해석자들은 메시아의 백성이 겪는 환난의 몫,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역자가 겪는 고통,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아직 감당할 섬김 등을 강조합니다. 가톨릭 전통도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과 그 고난에 참여하는 성도의 삶을 구별합니다. 본문은 고통 자체를 구원의 화폐로 만들거나 누군가가 교회를 위해 학대를 감수해야 한다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자발적 섬김의 대가와 강요된 폭력은 구별해야 합니다.

감추어졌다가 드러난 비밀

25~27절은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나님께 받은 청지기의 사명으로 설명합니다. 맡겨진 것은 자기 명성과 영향력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전하는 책임입니다. 그 말씀의 비밀은 오래 감추어졌다가 이제 성도들에게 드러났습니다. 여기서 비밀은 특별한 집단만 계속 독점하는 암호와 다릅니다. 하나님이 알리신 일이 중심입니다.

그 비밀의 부요함은 이방인들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너희 안이라는 표현은 개인의 내적 거하심과 공동체 가운데 계심을 서로 배제하도록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유대인의 경계 밖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그리스도가 주어졌다는 선교적 폭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더 높은 비밀을 얻어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주장은 이 선물의 충만함을 놓칩니다.

각 사람을 온전하게 세우는 노동

28절은 그리스도를 전하며 각 사람을 권면하고 가르쳐 온전하게 세우는 목적을 반복합니다. 일부 지식 엘리트만 완성에 이르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사람마다 지식과 경험은 다르지만 목표는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는 것입니다. 권면과 가르침은 서로를 버리는 대안이 아니라 그 성숙을 위한 섬김입니다.

29절에서 바울은 힘써 수고하지만 자기 안에서 능력으로 일하시는 그분의 역사를 따라 수고한다고 말합니다. 은혜의 능력과 인간의 노동은 경쟁하지 않습니다. 사역자는 자신이 사람을 구원하는 주인이라고 자랑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능력이 있으니 준비와 책임을 생략해도 된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건강한 교재와 가르침 역시 독자를 지도자에게 종속시키는 대신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서도록 도와야 합니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그리스도의 실제 죽음이 적대하던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였습니다.
  • 성도는 복음의 소망에 굳게 머물고 사역자는 그 성숙을 위해 고난과 수고에 참여합니다.
  • 드러난 비밀은 일부의 자격이 아니라 이방인들 가운데 주어진 그리스도와 영광의 소망입니다.
함께 생각해요

바울의 고난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보완하는 대가라는 해석은 왜 조심해야 합니까?

설명 보기

앞 단락이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화목의 근거로 선포하며 사역자의 고난은 그 구원이 전해지는 섬김의 문맥에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생각해요

각 사람이라는 반복이 공동체의 교육에 주는 과제는 무엇입니까?

설명 보기

소수의 엘리트를 만드는 데 머물지 않고 모든 성도의 이해와 성숙을 돕는 방향을 세웁니다.

함께 읽는 성경

  • 고린도후서 4:7~15: 연약한 사역자의 고난을 통해 생명이 전해지는 관계를 읽습니다.
  • 에베소서 3:1~13: 이방인에게 드러난 비밀과 복음을 섬기는 사명을 비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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