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17~21

하늘에 속한 백성은 몸의 변화를 기다립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삶은 추상적인 결심에 머물지 않습니다. 바울은 따를 본을 제시하고 십자가를 거스르는 삶과 하늘의 시민으로 사는 삶을 대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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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삶은 추상적인 결심에 머물지 않습니다. 바울은 따를 본을 제시하고 십자가를 거스르는 삶과 하늘의 시민으로 사는 삶을 대조합니다.

사람의 삶에서 복음의 모양을 배웁니다

3:17에서 바울은 자신을 함께 본받고 같은 본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을 살피라고 권합니다. 바로 앞에서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 요청은 흠 없는 인물을 숭배하라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 그의 본은 그리스도에게 붙잡혀 과거의 자랑을 내려놓고 계속 나아가는 방향에 있습니다. 독자들은 그 방향이 실제 사람의 선택과 섬김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배웁니다.

바울은 나만 보라고 하지 않고 우리라는 말로 본의 범위를 넓힙니다. 앞에서 소개한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도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보는 삶을 보여 주었습니다. 가르침은 옳은 말을 전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말이 사람의 생활에 어떤 모양을 만드는지 드러내야 합니다. 오늘의 공동체 역시 지도자의 성과나 말솜씨만 평가하기보다 약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 손해를 감당하는 방식, 권한을 사용하는 모습을 살펴야 합니다.

눈물로 말하는 십자가의 원수들

3:18에서 바울이 경고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적대적인 길을 걷습니다. 그가 눈물을 언급한다는 점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잘못을 분별하면서도 파멸을 기뻐하는 조롱의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원수라는 말은 단지 교리 문장을 다르게 표현한다는 의미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요구하는 삶을 거스르는 행동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앞뒤 문맥 전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들이 3:2의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완전히 같은 집단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뉩니다. 같은 상대를 다른 각도에서 묘사했다고 보기도 하고, 방종한 생활을 하는 별도의 집단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본문은 이름과 조직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음식 규정이나 성적 방종 가운데 하나만을 확정하여 모든 표현을 설명하기보다, 그들이 십자가의 길과 대조되는 가치와 행동을 따른다는 분명한 진술을 먼저 붙들어야 합니다.

배와 수치와 땅의 생각

3:19에는 마지막 결말, 섬기는 대상, 자랑하는 내용, 생각의 방향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배를 신으로 삼는다는 말은 욕구가 삶의 지배자가 된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수치를 영광으로 삼는다는 말도 마땅히 부끄러워할 것을 자랑하는 가치의 전도를 드러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관습을 가리키는지 논의가 있으므로, 특정 음식을 먹는 사람이나 특정 몸의 특징을 가진 사람을 곧바로 이 표현에 대응시키는 것은 위험합니다.

땅의 일에 마음을 둔다는 말은 직업, 가족, 사회적 책임을 모두 저급하게 취급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바울은 바로 다음 장에서 금전적 도움과 공동체의 실제 문제를 세심하게 다룹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미래를 무시한 채 눈앞의 욕구와 지위가 판단의 전부가 된 태도가 문제입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는 질문은 매일의 관심사 목록뿐 아니라 무엇이 최종적으로 옳고 가치 있다고 결정하는지를 묻습니다.

하늘의 시민권과 주님을 기다리는 삶

3:20은 공동체의 소속을 하늘에 있는 시민권 또는 시민 공동체의 언어로 설명합니다. 빌립보가 로마 식민도시였다는 배경은 이 표현을 생생하게 들리게 합니다. 그러나 모든 독자가 로마 시민이었다고 가정하거나 이 한 단어를 당시 제도의 세부와 하나씩 대응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핵심은 성도들의 결정적인 소속과 소망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오실 구주를 기다립니다.

이 기다림은 땅의 삶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갈 기회를 기다리는 태도와 다릅니다. 주님과 구주라는 고백은 세상의 권세와 이익을 최종 기준으로 삼지 않게 합니다. 정치적 책임에 관한 모든 답을 이 구절에서 바로 얻을 수는 없지만, 국가나 지도자나 집단에 대한 충성이 그리스도에 대한 소속을 대신할 수 없다는 방향은 분명합니다. 하늘에 속한 소망은 현재의 땅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를 바꿉니다.

버려질 몸이 아니라 변화될 몸

3:21에서 기다림의 결말은 낮고 연약한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을 닮도록 변화되는 일입니다. 몸의 낮음은 몸이 악한 재료라는 뜻이 아니라 죽음과 약함을 겪는 현재의 처지를 가리킵니다. 바울의 소망은 몸을 영원히 벗어나 순수한 정신이 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몸의 미래를 보장하십니다. 그래서 병들거나 늙어 가는 몸도 존중과 돌봄의 대상입니다.

이 변화의 능력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 복종시키실 수 있는 주님의 능력과 연결됩니다. 성도가 자기 훈련으로 영광스러운 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 확실한 소망 때문에 지금 십자가의 길을 견디며 서로를 돌봅니다. 3:17의 본받음과 3:21의 변화는 함께 읽혀야 합니다. 미래의 몸을 약속하신 주님을 기다리는 공동체는 현재의 몸과 필요를 하찮게 여기지 않고, 욕망을 신으로 만들지도 않으며,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길을 배웁니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바울과 동역자들은 완전무결한 인물보다 십자가의 방향을 따라 걷는 본으로 제시됩니다.
  • 십자가를 거스르는 삶은 눈앞의 욕구와 지위를 최종 기준으로 삼는 가치의 전도를 드러냅니다.
  • 하늘의 시민으로 사는 성도는 주님이 현재의 연약한 몸을 변화시키실 미래를 기다립니다.
함께 생각해요

3:18의 사람들이 3:2의 상대와 같은 집단이라고 확정할 수 있습니까?

설명 보기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집단의 다른 면이라는 해석과 별개의 집단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이들의 구체적 신원을 추측하기보다 십자가와 대립하는 생활의 방향에 주목해야 합니다.

함께 생각해요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은 몸과 세상에 대한 책임을 줄입니까?

설명 보기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몸을 변화시키실 소망은 지금의 몸을 귀히 여기게 하고, 주님께 속한 소속은 땅에서의 관계와 책임을 새 기준으로 판단하게 합니다.

함께 읽는 성경

  • 고린도전서 11:1: 바울을 본받는 일은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방향과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 고린도전서 15:42~49: 현재 몸의 연약함과 부활 때의 영광을 연결하여 몸의 미래를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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