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계획과 노동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보기
야고보서에 나오는 부자라는 표현을 모두 같은 사람의 일대기로 묶을 필요는 없습니다. 1장의 부자는 낮아짐과 삶의 덧없음을 직면하고, 2장에서는 사회적 힘을 가진 이들의 억압과 공동체의 편파적 환대가 드러납니다. 4장에는 장사와 이익을 자신 있게 계획하는 이들이, 5장에는 품삯을…
여러 부자 본문을 구별하여 읽기
야고보서에 나오는 부자라는 표현을 모두 같은 사람의 일대기로 묶을 필요는 없습니다. 1장의 부자는 낮아짐과 삶의 덧없음을 직면하고, 2장에서는 사회적 힘을 가진 이들의 억압과 공동체의 편파적 환대가 드러납니다. 4장에는 장사와 이익을 자신 있게 계획하는 이들이, 5장에는 품삯을 가로채고 사치하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각 문맥에서 무엇이 비판받는지 확인해야 경제생활에 관한 판단이 정확해집니다.
재산의 크기만으로 내면의 모든 상태를 판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책의 경고가 느슨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원이 많을수록 선택의 영향과 책임도 커집니다. 부가 자신을 안전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할 권리를 준다고 믿는다면 바로 그 신뢰가 문제입니다. 가난 역시 사람을 자동으로 선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의 취약함과 부자가 행사하는 사회적 힘을 대칭적인 개인 취향으로 취급해서는 본문의 정의를 놓칩니다.
계획을 세우되 생명을 소유하지 않기
4:13~17은 장사 자체나 미래 준비를 금지하지 않습니다. 장소와 기간과 수익을 자신 있게 늘어놓으면서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생명조차 자기 소유가 아님을 잊는 태도를 다룹니다. 주님의 뜻을 말하는 것은 계획을 세울 때마다 종교적 문구를 덧붙이는 기술보다, 계획의 전제와 수정 가능성을 하나님 앞에 열어 두는 태도입니다.
실제 계획에서는 수익의 목표뿐 아니라 누가 위험을 부담하고 약속이 지연될 때 누구의 생계가 흔들리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손해를 당연한 비용으로 정하지 않는 선택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뜻에 맡긴다는 말로 무책임하게 계약을 어기거나 준비를 생략해서도 안 됩니다. 유한함을 인정하는 겸손은 맡겨진 책임을 정확히 감당하는 성실함과 함께 갑니다.
지불하지 않은 품삯이 말합니다
5장의 강렬한 장면은 재물이 썩고 금은의 녹이 증언하며 노동자의 외침이 주님께 이르는 모습입니다. 침묵시킨 사람의 목소리도 하나님 앞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옷과 재물의 이미지는 장부상 소유의 증가가 윤리적 정당성의 증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마지막 날을 생각하는 믿음은 경제적 책임을 미래로 미루는 핑계가 아니라 지금의 행위를 드러내는 빛입니다.
품삯 문제를 오늘의 헌금으로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후원과 봉사를 많이 했다는 사실이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은 잘못을 상쇄하지 못합니다. 구체적인 적용에는 지급 약속의 이행, 약자의 이의 제기를 막지 않는 절차, 부당하게 얻은 이익의 반환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선의만 칭찬하는 데서 멈추면 반복되는 착취의 방식은 그대로 남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듣고 계신 외침에 공동체도 귀 기울이게 합니다.
인내는 불의를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5:7의 그러므로는 억압을 당하는 형제자매에게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라고 이어집니다. 심판을 주님께 맡긴다는 소망은 복수를 삶의 주인으로 삼지 않게 합니다. 그러나 악을 악이라고 말할 권리와 보호를 구할 길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앞 단락 자체가 노동 착취를 공개적으로 고발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언자의 인내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진실을 말하는 고난도 포함됩니다.
농부는 열매를 강제로 자라게 하지 못하지만 씨를 뿌리고 돌보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공동체도 증언하고 돕고 가능한 정의를 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억압받는 사람이 언제까지나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요구를 덧붙여서는 안 됩니다. 야고보의 소망은 고통받는 사람의 인내력을 칭찬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마침내 긍휼을 나타내실 주님의 성품을 바라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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