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단어를 문맥에서 읽는 법
갈라디아서의 율법은 주로 모세 율법과 그 언약 질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문맥에 따라 창세기를 포함하는 성경의 권위, 하나님 뜻의 요약, 특정 지배 아래 있는 상태를 설명할 때도 쓰입니다. 4:21은 율법을 듣겠느냐고 묻고 창세기의 이야기를 펼치며, 5:14은 율법의 뜻이 이웃…
율법을 한 뜻으로 고정하지 않는다
갈라디아서의 율법은 주로 모세 율법과 그 언약 질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문맥에 따라 창세기를 포함하는 성경의 권위, 하나님 뜻의 요약, 특정 지배 아래 있는 상태를 설명할 때도 쓰입니다. 4:21은 율법을 듣겠느냐고 묻고 창세기의 이야기를 펼치며, 5:14은 율법의 뜻이 이웃 사랑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이런 차이를 보지 않으면 바울이 모든 절에서 자신을 반박한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율법의 행위도 모든 선한 행동이라는 넓은 말로만 바꾸지 마십시오. 당시 논쟁에는 할례와 식탁을 비롯한 모세 율법의 요구가 구체적으로 놓여 있습니다. 동시에 바울의 문제 제기는 민족 표식만이 아니라 인간이 율법을 근거로 의로운 자격을 확보할 수 있는가까지 닿습니다. 역사적 문제와 하나님 앞의 구원 문제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육체와 성령의 대조를 정확히 읽는다
육체라는 말은 몸을 가진 삶을 중립적으로 가리킬 수도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원을 내세우는 방향을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2:20에서 바울이 현재 육체 안에서 산다고 말할 때 몸 자체가 죄라는 뜻은 아닙니다. 5장의 육체의 일에는 경쟁과 적대도 포함됩니다. 같은 단어라고 무조건 같은 해석을 넣지 말고 문장의 대조를 살펴야 합니다.
성령은 인간의 영적인 기분이나 몸과 반대되는 비물질적 부분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령은 믿음으로 받는 선물이며 자녀 됨과 새로운 생활의 능력에 연결됩니다. 성령을 따라 걷는다는 표현은 특별한 체험을 주장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사랑·온유·절제로 확인됩니다. 내면의 확신과 타인을 대하는 실제 행동을 함께 읽으십시오.
확신과 해석의 겸손을 함께 갖는다
이 편지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분하고 이방인도 믿음으로 약속의 상속자가 된다고 분명히 주장합니다. 반면 몇 표현의 문법, 역사적 방문의 대응,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는 말의 정확한 범위에는 견해가 나뉩니다. 중심 주장이 분명하다는 사실이 모든 세부 논쟁이 끝났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견을 설명한다고 중심 고백을 약화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단원을 읽을 때 왜 그렇게 해석하는지 한 문장으로 적어 보십시오. 본문에 있는 접속어, 반복어, 인용문, 앞뒤 논증이 근거인지 살피면 좋습니다. 그 뒤 오늘의 상황과 연결하십시오. 본문의 강한 언어를 남에게 먼저 적용하기보다, 내가 은혜 위에 어떤 자격을 덧붙이고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부터 검토할 때 재독이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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