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거룩함은 어떻게 함께 가는가
갈라디아서의 자유는 단지 규정의 숫자가 줄어드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위에 추가 자격을 세워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으려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동시에 자기 욕망이 주인이 되는 삶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5:1의 자유와 5:13의 사랑으로 섬김을 함께 읽으면…
무엇에서 벗어났고 무엇을 향하는가
갈라디아서의 자유는 단지 규정의 숫자가 줄어드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위에 추가 자격을 세워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으려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동시에 자기 욕망이 주인이 되는 삶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5:1의 자유와 5:13의 사랑으로 섬김을 함께 읽으면 바울이 어떤 자유를 말하는지 드러납니다.
이를 순서로 표현하면 먼저 완벽하게 섬겨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웃을 섬깁니다. 동기는 달라지지만 행동의 중요성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 거절당할까 두려워 점수를 쌓는 방식과, 받아들여진 은혜를 신뢰하여 이웃의 유익을 찾는 방식은 같은 행동을 해도 중심이 다릅니다.
규칙을 더할 때와 책임을 피할 때
공동생활에는 일정과 역할, 재정 사용에 관한 약속이 필요합니다. 이런 질서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율법주의라고 부르면 공동체의 책임을 피하는 구실이 됩니다. 반대로 어떤 관행이 좋은 목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구원과 소속의 필수 자격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 규칙이 실제 협력을 돕는지,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등급 짓는지 구별해야 합니다.
또 개인의 양심과 자유를 존중한다는 말이 상대의 피해를 무시하는 권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5:15은 공동체가 서로를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거룩함은 개인의 금지 목록을 지키는 데서 끝나지 않고 관계의 폭력과 경쟁을 돌아보게 합니다. 바울은 자유와 사랑의 책임을 동시에 말하여 통제와 방임의 양쪽 문제를 드러냅니다.
경고와 확신을 읽는 교회 전통의 차이
5:4의 은혜에서 떨어짐과 5:21의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경고는 실제적인 무게를 지닙니다. 개혁파 전통은 참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을 하나님이 끝까지 보존하신다는 약속과 함께 읽으며, 경고가 믿음을 지키게 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전통도 신자의 심각한 죄와 그 결과를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견인은 모든 생활이 무관하다는 방임의 이름이 아닙니다.
웨슬리 전통을 비롯한 다른 해석은 은혜를 받은 사람도 실제로 믿음에서 돌아설 수 있다는 경고를 더 직접적으로 강조합니다. 동시에 회개하고 돌아오는 길과 그 과정에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합니다. 어느 쪽이든 한 번의 실수로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절망하게 하거나, 믿음을 떠난 삶에도 아무 질문이 필요 없다고 안심시키는 해석은 피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기다리는 능동적인 삶
성령의 열매는 자기 계발의 성과만으로 만들어 내는 도덕적 우수성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생명을 얻었기에 그 성령에 맞추어 걸으라는 권면입니다. 의지와 습관을 사용하는 일이 성령을 의지하는 것과 반대되지 않습니다. 내 결심이 생명의 근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실제 말과 선택에서 사랑의 방향을 배워 갑니다.
이 과정에는 갈등과 실패, 회복이 있습니다. 열매가 더디다고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완성 불가능한 사람으로 낙인찍지 마십시오. 반대로 더디다는 이유로 해로운 습관을 계속 보호하지도 마십시오. 구체적인 잘못을 인정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으며 다시 걷는 일이 성령의 인도에 대한 응답이 될 수 있습니다. 자유를 받은 삶은 그리스도 안의 확신과 사랑의 책임을 함께 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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