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읽기
이 단락은 고대의 종들에게 직접 말합니다. 그들의 현실을 지우지 않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모범과 구원의 근거로 함께 읽어야 합니다.
이 단락은 고대의 종들에게 직접 말합니다. 그들의 현실을 지우지 않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모범과 구원의 근거로 함께 읽어야 합니다.
고대 가정의 종이라는 실제 대상
18절의 종은 고대 가정에서 주인에게 종속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현대의 고용 계약이나 자발적 봉사와 그대로 같지 않습니다. 신체적 처벌과 불리한 권력 관계가 실제로 가능한 상황에서 주어지는 권면입니다. 먼저 이 차이를 인정해야 오늘의 직장 생활에 단순히 옮겨 고통을 낭만화하는 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강한 사람보다 힘이 적은 이들에게 직접 말하고 있습니다.
선하고 관대한 주인뿐 아니라 비뚤어진 주인에게도 복종하라는 말은 현대 독자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장입니다. 그 어려움을 감추지 않아야 합니다. 편지는 이 단락에서 노예제 폐지의 제도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주인의 폭력과 불의를 선한 것으로 선언하지도 않습니다. 이어지는 문장은 부당하게 고난받는다고 명시합니다. 상황 속의 신자를 권하는 말과 제도나 가해자의 정당성을 승인하는 말은 구별해야 합니다.
잘못의 결과와 부당한 고난
19~20절은 하나님을 의식하여 부당한 고통을 견디는 경우와 자신의 잘못으로 처벌을 받는 경우를 구별합니다. 어떤 고난을 겪기만 하면 자동으로 의롭다는 공식이 아닙니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받는 이의 진실함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위로가 있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이 구절을 들이밀며 자기 행동을 합법화한다면 수신자와 권면의 방향을 뒤바꾸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신자가 어떤 도움도 요청하거나 위험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적용에서는 당시 종이 선택할 수 있던 조건과 오늘 가능한 보호·신고·공적 판단의 길이 다르다는 사실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부당한 고난 중에도 선을 버리지 말라는 요청은 악을 계속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허가가 아닙니다. 공동체는 고난받는 사람의 인내를 칭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제로 돌볼 책임을 갖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본
21절은 그리스도가 독자들을 위해 고난받고 본을 남기셨다고 말합니다.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은 그의 죽음이 가진 구원의 역할을 신자가 다시 수행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음 절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고 모욕에 모욕으로 갚지 않으며 의로 판단하시는 분께 맡기는 태도를 설명합니다. 따라야 할 방향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제시되므로 막연히 더 많이 아파야 한다는 이상으로 바꾸지 않아야 합니다.
22~23절은 이사야 53장의 종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스도는 죄와 속임이 없으나 고난받으셨습니다. 침묵과 비보복은 악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의롭게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맡겼다는 표현은 오히려 불의가 실제로 심판받을 문제임을 전제합니다. 신자는 사적인 보복을 포기할 수 있지만 그 사실이 진실 규명과 약한 사람의 보호를 금하지는 않습니다.
모범을 넘어 죄를 담당하신 분
24절은 그리스도가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고 말합니다. 앞의 본을 남기셨다는 설명만으로 그의 사역 전체를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의 죽음은 독자를 죄에서 돌이켜 의에 살게 하는 구원의 사건입니다. 모범과 구속을 경쟁시키기보다 그리스도가 행하신 고유한 일 때문에 독자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연결을 보아야 합니다.
상처로 나음을 얻었다는 말은 이사야 53장의 언어와 죄를 떠나 의에 사는 목적 안에 놓여 있습니다. 질병과 몸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이 구절만으로 모든 신자가 지금 모든 병에서 반드시 나아야 한다는 계약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문맥은 죄를 담당하심과 양처럼 방황하던 이가 목자에게 돌아온 관계의 회복을 직접 설명합니다. 낫지 않은 사람의 믿음을 정죄하는 공식으로 쓰지 않아야 합니다.
돌아온 양과 돌보시는 목자
25절은 흩어져 길을 잃은 양의 상태와 목자에게 돌아온 현재를 대조합니다. 목자와 감독자라는 호칭은 그리스도의 돌보심을 강조합니다. 사회적 권력이 독자를 함부로 대하더라도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소유물처럼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돌보시는 사람이라는 정체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5장의 지도자 권면도 이 목자 이미지와 연결하여 읽으면, 공동체의 권위는 지배보다 돌봄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한 단락의 적용을 정리할 때 인내를 요청받는 사람과 악행을 하는 사람에게 같은 말을 무차별하게 적용하지 마십시오. 고난 중의 신자는 보복과 죄로 돌아서지 않고 그리스도를 신뢰하도록 위로받습니다. 반면 사람을 해치는 이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근거를 얻지 못합니다. 전체 편지가 요청하는 선행과 존중, 서로 돌봄을 함께 보아야 이 어려운 본문을 책임 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핵심을 다시 읽어요
- 고대 종의 현실과 현대의 관계를 구별해야 합니다.
- 그리스도는 비보복의 본이시며 동시에 죄를 담당하신 구주입니다.
- 부당한 고난 중의 인내를 가해자의 정당화나 보호의 포기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모범입니까, 구원의 사건입니까?
설명 보기
본문은 둘을 함께 말합니다. 21~23절은 따라야 할 태도를, 24~25절은 죄를 담당하고 목자에게 돌아오게 하신 고유한 사역을 설명합니다.
상처로 나았다는 말은 모든 병의 즉시 회복을 보장합니까?
설명 보기
그런 보장으로 확대할 문맥적 근거는 부족합니다. 문장은 죄를 떠나 의에 살고 방황하던 양이 목자에게 돌아오는 회복을 직접 설명합니다.
함께 읽는 성경
- 이사야 53:4~12: 죄를 담당하는 종과 비보복, 회복의 배경을 살펴봅니다.
- 베드로전서 5:1~4: 그리스도의 목자 되심이 지도자의 돌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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