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17~23절; 갈라디아서 6:1~2; 야고보서 5:19~20

분별하면서 긍휼을 베푼다는 것

유다서의 독자는 잘못된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만 기르도록 부름받지 않습니다. 20~23절은 믿음을 세우고 기도하며 기다리고 사람을 도우라고 권합니다. 앞의 긴 비판을 다 읽었더라도 이 실제 응답을 건너뛰면 편지의 목표를 충분히 듣지 못합니다. 신실한 공동체는 오류를 많이 적발하는…

약 3분깊이 읽는 성경
편안하게 읽기

강한 비판 뒤에 주어진 적극적인 과제

유다서의 독자는 잘못된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만 기르도록 부름받지 않습니다. 20~23절은 믿음을 세우고 기도하며 기다리고 사람을 도우라고 권합니다. 앞의 긴 비판을 다 읽었더라도 이 실제 응답을 건너뛰면 편지의 목표를 충분히 듣지 못합니다. 신실한 공동체는 오류를 많이 적발하는 집단이 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받은 은혜가 실제 관계를 살리는 방식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긍휼은 처음 인사에서 독자가 풍성히 받기를 바랐던 선물입니다. 마지막에 다른 이에게 베푸는 자비는 자신이 받은 것과 무관한 새 요구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흔들림에도 응답하는 관계입니다. 이 출발점은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교정한다는 태도보다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돌봄을 가능하게 합니다.

사본과 번역의 차이를 정직하게 보기

22~23절은 고대 사본들에 단어와 문장 구분의 차이가 전해지는 대목입니다. 공식 SBL 본문은 의심하는 이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다른 이들은 불에서 끌어내어 구하며, 또 다른 이들은 두려움 가운데 긍휼을 베푸는 형태로 읽습니다. 반면 전통적인 읽기를 반영한 번역에서는 분별하며 자비를 베풀라는 표현과 다르게 나뉜 대상 구분이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숨기고 모든 번역에 똑같은 세 집단이 명시되어 있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차이가 있으니 도움이 필요한 이를 돌보라는 뜻 자체를 알 수 없다고 결론낼 필요도 없습니다. 어느 부분이 실제로 다르고 어떤 권면이 함께 남는지 나누어 살피십시오. 독자는 자신이 가진 성경의 주석을 확인하면서 긍휼과 위기의 심각성, 돕는 사람의 조심스러움을 함께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상태를 듣고 다른 도움을 제공하기

의심과 논쟁, 깊이 해로운 방향에 묶인 상태는 같은 말로만 다룰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질문을 충분히 들어 주고 함께 본문을 확인하는 도움이 필요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급박한 위험에서 실제로 벗어나도록 돕는 행동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모든 경우의 절차를 세밀하게 규정하지 않지만 상대의 처지와 필요를 살피는 책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갈라디아서 6:1~2는 잘못에 빠진 이를 온유하게 회복시키면서 자신도 시험을 받을 수 있음을 살피도록 합니다. 유다서의 두려움과 악에 대한 경계도 돕는 이의 무오함을 전제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언제나 안전하다는 과신이나 상대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비는 실제 행동을 요구하지만 그 행동의 방법과 영향을 계속 점검해야 합니다.

악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사람을 돌보기

더럽혀진 옷까지 미워하라는 이미지를 사람 자체를 혐오하라는 명령으로 바꾸면 같은 문맥의 긍휼과 충돌합니다. 반대로 사람을 도우려면 그를 해치는 모든 방향을 함께 승인해야 한다고 생각해도 분별이 사라집니다. 상대를 존중하며 실제로 유익한 도움을 제공하되 해로운 행동에 무감각해지지 않는 관계가 요구됩니다. 사랑과 경계는 상황의 구체성을 살필 때 함께 실행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누구를 도울 때 어떤 태도로 말하는지 돌아보십시오. 상대를 자신의 정답을 증명할 대상으로만 대하는지, 그의 질문과 사정을 듣고 실제 회복을 바라는지 차이가 있습니다. 유다서의 경고는 공동체를 더 거칠게 만드는 허가증이 아닙니다. 주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받은 믿음을 지키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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