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낱말을 함께 살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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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 예언자를 통한 말씀의 절정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며 창조·정결·통치의 사역을 이루는 분입니다. 피조물 가운데 높은 존재로만 제한할 수 없습니다. | 1:1~4 |
|---|---|---|
| 광채와 형상 | 아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존재를 정확하게 드러내심을 말하는 비유입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지우지 않으면서 아들의 신적 존귀를 강조합니다. | 1:3 |
| 오른편 | 공간의 좌표보다 존귀와 통치의 자리를 나타냅니다. 예수의 앉으심은 제사의 완성과 왕적 위엄을 보여 주며 현재의 중보와 충돌하지 않습니다. | 1:3; 10:12 |
| 천사 | 구원을 상속받는 이들을 위해 보내심받아 봉사하는 영입니다. 선한 사역을 존중하되 아들에게 속한 경배와 권위를 대신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 1:5~14 |
| 흘러 떠내려감 | 들은 구원을 소홀히 하여 그 중심에서 멀어지는 위험을 나타냅니다. 공개적 반항만 아니라 무관심에도 주의하며 함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 2:1~4 |
| 온전하게 하다 | 문맥에 따라 사명의 완수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결정적 정결을 말합니다. 언제나 도덕적 결함을 고친다는 한 뜻으로 고정하면 예수의 사역을 오해합니다. | 2:10; 10:14 |
| 대제사장 | 백성을 위해 하나님과 관계된 사역을 맡는 대표자입니다. 예수는 죄 없는 자비와 신실함, 영원한 생명으로 그 역할을 결정적으로 이루십니다. | 2:17; 7:23~28 |
| 시험 | 유혹과 고통스러운 시련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인간의 시험을 실제로 겪되 죄 없이 견디셨기에 시험받는 사람을 도우십니다. | 2:18; 4:15 |
| 하나님의 집 | 시설만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백성을 가리킵니다. 모세는 집 안의 신실한 종이며 그리스도는 집을 맡은 아들입니다. 공동체는 소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 3:1~6 |
| 오늘 |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하도록 열린 기회의 시간입니다. 광야의 경고는 과거에 갇히지 않고 현재의 공동체도 완고해지지 않도록 부릅니다. | 3:7~15 |
| 완고함 | 하나님의 신실함을 경험하고도 불신과 거부의 방향을 고집하는 마음입니다. 모든 정직한 의문과 같지 않으며 상호 권면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 3:12~19 |
| 안식 | 창조의 쉼과 가나안의 약속, 현재의 믿음과 미래의 완성을 연결합니다. 단순한 피로 해소나 요일 논쟁 하나로 전체 의미를 제한할 수 없습니다. | 4:1~11 |
| 은혜의 보좌 | 왕의 위엄이 사라진 자리가 아니라 예수로 인해 자비와 도움을 얻으러 나아갈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담대함의 근거는 자기 공로가 아닙니다. | 4:14~16 |
| 배운 순종 | 예수가 이전의 불순종을 고쳤다는 뜻이 아니라 아들임에도 인간의 고난 속에서 순종을 실제로 살아 내고 완수하셨다는 뜻입니다. | 5:7~9 |
| 젖과 단단한 음식 | 초보와 성숙을 설명하는 비유입니다. 성숙은 비밀 지식의 양보다 말씀을 사용하여 선과 악을 분별하도록 훈련된 삶에 나타납니다. | 5:11~14 |
| 배교 | 아들과 그의 구원의 은혜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며 떠나는 위험을 말합니다. 일반적 피로와 일시적 의심을 무차별적으로 같은 상태라 판정하면 안 됩니다. | 6:4~8; 10:26~31 |
| 약속과 맹세 |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뜻을 상속자에게 확증하는 두 근거입니다. 맹세가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 6:13~18 |
| 소망의 닻 | 소망이 우리 기분보다 하나님 앞에 들어가신 예수에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휘장 안에 앞서 가신 분 때문에 확실하고 견고합니다. | 6:19~20 |
| 멜기세덱 |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십일조를 받은 왕이며 제사장입니다. 족보와 생애 끝이 기록되지 않은 모습이 아들의 영원한 직분을 가리킵니다. | 7:1~10 |
| 중보 |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위해 그리스도가 이루고 지속하시는 사역입니다. 완성된 제사를 보충하는 새 희생이 아니라 살아 계신 구원자의 돌봄입니다. | 7:25; 9:15 |
| 새 언약 | 예레미야가 약속한 마음의 법, 하나님을 아는 관계와 죄 사함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언약입니다. 단순한 민족 교체나 무규범을 뜻하지 않습니다. | 8:8~13 |
| 모형과 그림자 | 하나님이 주신 이전 제도가 더 큰 성취를 가리키는 기능입니다. 모형의 실제 역사와 가치를 인정하면서 최종 실체와의 차이도 함께 봅니다. | 8:5; 10:1 |
| 지성소 | 성막의 두 번째 휘장 뒤 공간으로 대제사장만 속죄일에 들어갔습니다. 제한된 접근은 그리스도를 통한 더 온전한 길을 기다리게 합니다. | 9:1~10 |
| 양심의 정결 | 죄의 실제 문제를 다루어 하나님께 나아가고 섬기게 하는 은혜입니다. 잘못을 잊거나 피해에 책임지지 않는 심리적 무감각과 다릅니다. | 9:14; 10:22 |
| 속량 | 죄의 속박과 책임을 다루어 자유와 상속을 얻게 하는 구원의 사역입니다. 예수의 자기 드림으로 영원한 효력을 가지며 임시 유예에 그치지 않습니다. | 9:12~15 |
| 단번 | 그리스도의 자기 드림이 반복될 필요 없이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그 효력에 의지한 중보와 감사의 예배가 계속된다는 사실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 9:26~28; 10:10 |
| 담대함 | 자기 잘못을 가볍게 보는 뻔뻔함보다 예수의 사역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뢰입니다. 그 담대함으로 소망의 고백을 지켜야 합니다. | 10:19~23; 10:35 |
| 믿음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현실과 약속을 신뢰하여 응답하는 삶입니다. 자기 욕망을 강하게 상상하면 이루어진다는 성공 기술이 아닙니다. | 11:1~7 |
| 본향과 도시 | 하나님이 준비하신 최종 소속과 완성을 나타냅니다. 현재의 삶을 무가치하게 만들지 않고 고난 속의 인내와 이웃을 향한 책임을 지탱합니다. | 11:13~16; 13:14 |
| 훈련과 징계 | 자녀를 거룩함과 의의 열매로 빚으시는 하나님의 교육입니다. 모든 고통의 개별 원인을 처벌로 단정하거나 인간의 학대를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 12:5~13 |
| 찬양의 제사 | 그리스도를 통해 드리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선행과 나눔도 함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로 불리며 추가 속죄의 대가와 구별됩니다. | 13:1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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